한국일보

마음을 살피며

2008-09-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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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원(수필가)

좋은 날씨, 좋은 계절, 견디기 참 좋은 기온, 어느 것 하나 불평거리 없을 것 같은 청명함이다. 그런데도 마음에 갈등이 드리우면 그런 외적 조건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한다.인간관계에서 자신에게 이로움이 있기만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그래도 마냥 마음 깊숙이에는 그런 바램들로 채워져 있으니 ‘마음 비우라’는 얘기는 아마 그런 것을 비워내라
는 것이리라.

스스로 느끼는 억울함이나 화남, 분노, 아픔까지도 어쩌면 그 단순한 이로움에 해가 갈 때 느끼는 요소들이 아닐까 한다.그러니 이기적 사고만 떨쳐낼 수 있다면 억울하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렇게 논리적으로 마음의 움직임과 연관관계를 정리하고 보니 조금 전까지 어처구니 없어하며 분노했던 ‘화’가 스르르 사라짐을 본다. 그리고 평정한 마음으로 그 사건을 요약해 보고픈 생각에 마음을 정리하듯 글을 쓴다. 어쩌면 상대는 이런 사실을 모르기에 스스로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좀 더 명확한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민서류 전문인(변호사)을 통해 나는 모른 상태에서 영주권을 신청했던 사람, 내가 지불하지 않는 월급까지 지불했다고 하였다.


월급 지불 사실이 없었다는 나의 서류가 오류임을 시인하는 싸인을 요청한다. 변호사가 나에게 ‘큰 것도 아닌 영주권 서류인데 싸인 한 번 해주지 안 해 줬냐’며 핀잔 섞인 불만을 들었다. 몇 몇 사람한테 답답해서 한 하소연이라 이해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본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그런 말 한 사람 자기들이 지어서 한 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에게 작은 해라도 입을까봐 사린 일 때문에 입소문이 파다하여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을…

‘그러면 됐다’는 얘기로 끝을 맺고 헛웃음을 웃었지만 은근히 솟아오르는 분노의 불길이 이 좋은 계절도 못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고 작은 이로움을 향한 범벅된 내 마음을 보면서 진짜 웃음이 터지며 분노가 사라졌다. 평정한 마음에 담겨오는 삶의 자세, 이만큼 살았어도 웅크러들고 구겨지고 펴지는 얄팍한 마음을 지녔음이 어쩔 수 없는 세속인임을 알게 한다.인생살이 길어야 정신차리고 살 수 있는 햇수는 80이라는데.. 모든 것 놓아버리면 편하고 안정되고 자비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나에게 어떤 억울함도 용납 못하겠다는 에고로 뭉쳐진 자신의 모습에서 철들어 인간답게 살 날이 얼마쯤일까를 헤아리게 한다.

억울함을 당해 그것을 밝히려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려 하면 적을 만드나니 그 억울함을 공부삼아 마음을 살펴 수행하라는 성인의 말씀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천 못하는 자신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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