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병에 걸린 한국 종교계

2008-09-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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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목사)

지금 한국 종교계는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소란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 수위가 선을 넘어섰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대형 교단이 사람들에게 종교의 가르침보다는 정권에 따른 세상사에 목적을 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지나간 10년 동안 성직자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떠나 정권의 고위직으로 활동했고, 각종 예산을 집행하는 위원장을 지냈다. 이런 일들을 가리켜 산야에서 수행했던 선비들은 ‘쉰 밥에 파리 떼’라고 말했다.광우병 쇠고기 파동에도 종교계가 시국미사, 시국법회, 시국 기도회 등에 참가함으로써 시위가 몇 달간이나 이어졌었다. 이처럼 종교계가 국가의 법질서와 경제를 뒤흔든 조직적인 시위를 벌이고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는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다.


한국의 헌법은 제헌국회 때부터 모든 종교의 가르침의 뿌리가 법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직자들의 눈으로 그 뜻을 읽을 수 없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상과 우주의 질서를 이루는 신비의 섭리도, 고마움도, 자신의 부끄러움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의 세상에는 영원한 것과 절대란 없다. 인간에게 영원한 절대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 뿐이다. 그 죽음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성직자의 자세이고 종교인의 자유가 열리는 길이다.
오늘의 한국 종교계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차는 물량주의에 따른 대형 쇼를 성공으로 본다. 이는 8,000만이 숙청된 무덤을 자랑하는 모택동의 중화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 시위에 동참한 성직자들의 공동 목적은 ‘인권’ ‘평등’을 주장하나 구체적인 사안은 보안법 폐지, 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이다. 그들의 내심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과 ‘불교인권위’가 대변하듯 60년의 한국정부와 현정부를 부정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직접민주주의’이다. 그들의 꿈은 친북 반미투쟁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며 은밀히 북한을 왕래하고 겉으로는 인권을 위한 평등사회를 지향한다고 큰 소리를 친다.

얼마 전 조계사의 지관 스님은 인평불어(人平不語)를 말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종교 차원의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불교사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사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성철스님의 가르침에는 누구를 향해서도 ‘평등’을 말할 시간이 없다. 종교의 구도는 놀라운 순간이기에 한눈을 팔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명언으로 정권이 가는 길과 종교의 길은 전혀 다른 길임을 가르친다.미래의 한국을 보는 한 방법은 오늘의 한국 천주교, 불교, 기독교를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종교는 세상을 보는 축소된 거울이 됨을 명심해야 한다. 성직자들이 정권의 단물을 마시고 생성된 악한 세포 몇 개가 수많은 생명을 사멸로 몰아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여야 하는 일은, 초야에 묻혀서 조용히 사라져가는 지성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책임이 있는 일이다.흘러가는 역사는 신비의 질서 속에 아직도 우리에게 자유로움을 개방하고 있다. 이러한 섭리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종교인들에게는 생명의 고마움이 주어진다.그러나 오늘의 한국 종교는 세상에 물든 중병에 걸려 자유의 고마움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소란을 피운다. 그것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제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구도의 길은 시청 앞이나 광화문 거리가 아니라 고독한 자신의 마음 속에 불을 켜고 성전을 쌓는 데에 영원한 길이 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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