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입소문에 피해보는 노인들

2008-09-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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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희(취재1부 기자)

“내가 잘아는 사람이 노인아파트 1년안에 분양받아준데...”
두 달전 일이다. 플러싱의 한 노인복지기관 관계자와 통화를 하던 중에 정부 노인복지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노인복지기관에 출입하기 전에는 잘 모르던 분야였던 지라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데 자연스레 이야기가 노인사기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 관계자는 ‘아직도 노인복지프로그램 신청을 해준다고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들이 많다’라며 당시 돕고 있던 노인사기 케이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6년이나 노인아파트를 기다려온 한 할아버지. 답답한 마음에 경로회관에서 친구들과 노인아파트에 대한 하소연을 시작했다가 친구로부터 노인아파트를 1년 안에 배정받게 해준다는 40대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들도 이 남성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고 급기야 함께 모여 노인아파트를 분양받으러 가자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며칠 뒤 플러싱 소재 빵집에서 노인 20여명과 함께 문제의 40대 남성을 만난 할아버지. 이 남성은 “잘 아는 교회가 짓는 노인 아파트로 지금 신청하면 1년 안에 배정받을 수 있다”는 말로 노인들을 현혹시켰다.

이날 노인들은전화번호와 소셜번호 등 개인 신상정보를 주고 계약금 조로 200달러를 지불했다. 일주일이후 연락을 하겠다던 이 남성은 그대로 잠적해 버렸다. “(남성이 준 전화번호로) 아무리 연락을 해도 안되더라”는 이 할아버지는 급기야 노인 복지기관을 찾아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제 서야 이 관계자도 알게 됐다고. 문제는 노인 아파트뿐 아니라 푸드스탬프, 은퇴연금, 메디케어, SSA, SSI 등 정부 노인복지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브로커라며 접근해 수수료를 뜯어 달아나는 사기행각이 이어지고 있는 것.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관계자는 다른 사례도 들며 “문제는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대다수의 정부 복지 프로그램은 한인 비영리 단체를 통해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왜 문제가 생긴 다음에야 비영리 단체를 찾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주기적인 감사를 받는 정부지원 비영리 단체들을 찾지 않고 왜 아직도 불확실한 입소문에 의지해 브로커들로부터 사기피해를 입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오히려 처음부터 시작하면 쉬울 것을 매번 브로커가 망쳐놓은 케이스를 떠맡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하소연을 늘어놨다.

한인노인들이 입소문이 정확한 정보망이라 믿는 것은 큰 문제이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다 보면 이야기가 와전되기도 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노인사기가 한인사회에 만연한 원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언어가 불편하고 정보에 어두운 노인들에게 10여년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노인복지기관들이 아직 생소할 지도 모른다. 이런 노인들을 찾아가 각종 서비스에 대해 알리는 비영리기관들의 노력이 더 없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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