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원한 여름 선물

2008-09-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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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맞은 아들 녀석을 겨우 설득해 서울행 비행기에 태웠다.
3년 전 그 아이에게 비춰진 서울은 왠지 낯설고 혼잡한 교통에 익숙하지 않아 전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불편이 영 마땅치 않았나 보다.
어딜가도 어눌어눌한 우리말 발음에 시선이 모아지는 것에 적응하기 힘들어 서울 다녀와서도 유난히 조용하게 침묵하던 기억이 새롭다. 끈질기게 다니지 못한 토요 한글 학교 수업을 그때 만큼은 무척이나 아쉬워 하던 모습이 다시 떠올려졌다.
조국이라는 개념보다 떨어져 살면서도 꼬박 용돈을 보내시는 할머니의 정성에 부응하느라 마지 못해 밤 비행기에 오르며 애써 웃어 보인 녀석의 어깨에 걸린 가방이 갑자기 무거워만 보였다. 3주 가까운 일정을 잘 견딜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면서도 가이드없이 혼자 씩씩하게 걷는 뒷모습이 두 눈에 가득 찬다. 몇 년 전 한국 영화 ‘쉬리’를 아주 재밌게 본 뒤 조금씩 우리 영화에 관심을 갖더니 이번에도 서너 편의 영화를 보고 오겠다는 기대감을 보여 다행스러웠다.
한국 음식이 혹시 맞으려나 했던 우려는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난 후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며 애써 잡은 다이어트 계획은 미국에 온 이후로 미루겠다는 전화가 반갑기만 했다. 시차가 맞지 않아 며칠을 낮과 밤이 바뀌다가 모처럼 만나는 친척 손에 끌려 여기저기 다녀 본 우리나라 고적에 그간 사극 드라마에서 본 호기심이 그대로 연결 돼 흥미롭다며 며칠을 들떠 다녔다는 목소리에 강한 어조가 담겨 있다.
미국에선 잘 이용하기 힘든 대중교통에 점차 흥미로와지고 모두 똑같은 피부톤을 갖고 한 언어만 쓰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했다.
그렇게 단일화 된 문화에 대한 흥미가 점차 강해질 때 때맞춰 벌어진 베이징 올림픽 경기는 아들에게 ‘대한민국’을 따라 부르며 열심히 소리 높여 응원하는 단결심을 갖게 해 마음 뿌듯했다.
그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 말과 문화를 알리는 것에 소홀한 부모의 게으름이 잠시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한글은 아무 때나 시간이 되면 시킨다면서도 차일피일 미뤄 어린아이 표현에 머물게 한 무심함이 조국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마저 느끼지 못하게 한 건 아닌지 안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모처럼 올림픽을 통해 여러 종목이 메달권에 오르며 ‘코리아’라는 호명과 함께 애국가가 여러번 울리면서 숙연하게 치뤄지는 시상식에 우리나라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놀랍도록 갖는 것을 보고 가슴 뿌듯했다.
걱정했던 3주 일정을 모두 마친 녀석의 건강한 모습에 그간 보이지 않았던 서울일정에 대한 아쉬움을 보며 훌쩍 커버린 어른스러움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한 여름 밤의 깊은 잠을 꼬박 설쳤어도 마냥 좋은 추억만 기억하는 아들의 큰 가방 속에 하나 가득 찬 학년 별 국어책 시리즈가 반갑기만 하다. 늦게나마 알게 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다시 돌아보는 두 눈에 녀석의 강한 손뼉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대한민국 짝짝짝’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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