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헌금 사용에 대하여

2008-09-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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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회계사)

교포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교회에, 종교단체에 물질을 바치는 이들의 마음, 무엇인가 나누고, 자신의 것을 남을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 하나님 앞에 순종하려는 마음, 모두가 귀한 마음들이다.그 귀한 마음을 끝까지 귀하게 만드는 일은 그 헌금을 올바로 사용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헌금을 사용함에 참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 사용을 결정하는 이들은 목사나 교회의 직분을 맡은 이들, 혹은 모금단체의 의사결정 모임 등 다양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미 바친 것으로 자신의 일은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헌금이 잘못 쓰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누군가에 사기
도 당하고, 전혀 엉뚱한 데 쓰여지기도 하고 낭비되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용도에 쓰여지기도한다. 그를 사용하는 최종 수혜자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가 되어야 할 것이고 바친 이의 뜻에 합당한 곳에 쓰여져야 한다.


누구의 책임인가? 사용한 당사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신의 뜻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헌금을 드린 이들에게 있지 않을까? 헌금을 바친 이들은, 최중 수혜자에게 자신이 직접 전달한 것이 아니라면 그 물질의 흐름을 확인해야 할 의무도 있을 것이다.그 물질의 분배를 결정하는 이들은 지혜롭고 신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목사 또는 단체의 장이 독단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유용도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것을 신의 뜻으로도 여긴다. 간혹, 그 분배의 책임을 맡은 이가 독단적인 결정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 유용이 아니더라도 독단적인 그 판단과 결정을 평가, 확인하는 장치가 없는 경우도 많다. 최소한, 최소의 장치는 교회를 비롯해 어느 단체이든 필요할 것이다. 뉴욕 교포사회에서도 그 유용과 비리가 드러난 경우가 많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또한 뱀처럼 지혜로우라 하신다. 순수함만으로는 세상의 영악한 세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뱀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설사 누군가에 이용당한다 하여도 알고 이용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주의 종, 혹은 선교사라는 모양만을 보고 그럴 듯하게 차려진 형식에도 속을 수도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드려진 물질이 결국은 버려질 수도 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결국은 고치시겠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은 멸시당할 수도 있다.

세상은 변해간다. 물질의 유혹도 능력도 점점 커지는 세상이다. 더욱 더 비둘기의 순수함과 뱀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헌금을 원하고 사용하는 많은 이들이 모든 수입원과 지출을 완전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도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온전한 공개는 서로의 신뢰를 다져준다.바쁘다는 이유, 또는 극히 인간적인 생각, 즉 모든 수입을 공개하면 헌금을 바치려는 이들이 적
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들은 최소한 하나님 앞에, 성도들 앞에 정직해야 할 것은 기본일 것이다.

어떤 형식의 헌금사용 보고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이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것은 오히려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결코 예수의 섬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교만함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순전한 믿음과 맹신은 다르다. 책임을 맡은 이는 신실함, 지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성도들의 귀한 성금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일은 무거운 책임이 수반되는 하나님의 청지기 일이다. 헌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의 책임의식과 함께 걷은 헌금을 분배하는 이들의 사명감, 하나님과 성도들에의 책임의식 또한 결코 그보다 작지 않을 것이다. 자칫 그 사명의 본질을 자의, 혹은 타의로, 또한 무지함이나 자신의 생각, 뜻으로 변질시킬 때, 헌금을 드린 성도들은 물론 바친 물질의 주인되는 신과도 아무 관련이 없는 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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