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

2008-08-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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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종교이든지 그 종교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그 종교를 믿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판단되기 마련이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는 이치이다.

좋은 종교는 좋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나쁜 종교는 나쁜 행동으로 나타난다. 물론 남을 속이기 위한 가식적 행동이 잠깐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는 원칙은 매우 건실한 기준이다. 우리가 어떤 종교에 대해 정통이니 이단이니 하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상대적인 것이며 객관적인 평가는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순환논리이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므로 나의 행동은 어떤 것이든 다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근본주의적이고 무식한 종교인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이다.

둘째는 상대논리이다. 절대적 기준은 절대로 없으므로 각자의 주장이 다 옳다는 주장이다. 제법 유식하고 자유주의적인 종교인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이다.

이 주장이 오류인 이유는 절대적인 기준은 절대 없다는 그 주장 자체가 절대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순환론과 상대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적 열쇄는 우리 모두가 무지하고 어리석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존재하므로 인류 보편의 절대적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예컨대 기독교의 하나님은 명백하게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 자신의 성품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려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가까이 다가감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인간으로서 완벽하게 행할 수는 없겠지만 이 가치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하려면 손해를 보는 일이 많으므로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다른 방법 즉 헌금이나 직분이나 여타의 종교적 행위로 이 빈칸을 메우려드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모두 헛일이다. 예컨대 정직하기를 포기하고 다양한 술수를 써서 아무리 큰 교회를 이룩한다 할지라도 이는 이미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부정직한 방법으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된다한들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다.


좋은 기독인들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삶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흥미있게도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도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 최고의 덕목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애와 공평과 정직은 하나님의 성품임과 동시에 각 종교에 참여하는 신앙인들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인류 공통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하는 모든 사람이 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 덕목을 행하지 않는 자들을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백 종 국
(UCLA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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