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인의 신앙 - 존재는 신비다

2008-08-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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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문기사에서 ‘매미’가 땅 속에서 애벌레로 7년을 기다렸다 나와 2주간을 살고 간다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학교 다닐 때 생물시간에 들었을 터인데도 그 당시엔 그런 이야기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름 한 철, 그것도 고작 2주 정도 노래하기 위해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하며 기다린다는 사실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알고 보면, 그와 같은 일이 매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꿀 한 숟가락도 꿀벌이 4,200번이나 꽃을 왕복하면서 채집한 결과라는 것이기에 말이다.


매일 매일을 자연계 안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생명체의 신비로움조차 무관심하게 대해 온 적이 많다. 일례로 어릴 적 무더운 삼복더위 푹푹 찌는 여름 한 철, 마을 입구 느티나무 맡에 누워 오수를 즐길 때 ‘맴~ 맴~ 맴’ 자장가를 불러주는 매미의 삶에 무신경했었다.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다가는지 도통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산골에서 자란 시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친해진다. 봄이면 개울가에 번져가는 노란 개나리꽃들과 마을 뒷산의 연분홍 진달래꽃들이 그들의 친구가 된다.

논길마다 보랏빛으로 채색하는 자운영과 이름 모를 들풀 가운데로 발길마다 놀라 도망치는 풀벌레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은 절로 시인이 되고 시인의 눈이 된다.

자연 속에서 ‘존재의 신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인생길이 워낙 버거워서 그렇지, 실은 살아 있다는 그 자체는 이처럼 환희요 신비다. 식물도 살아 있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죽어버리면 곧장 시들고 말라버린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나 푸른 초원을 뛰어다니는 토끼조차도 살아 있기에 귀엽게 보인다. 생명은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야 할 일이다.
개미만 보아도 그처럼 신나게 돌아다니다가도 죽으면 몇 분 내에 흙이 되어 버린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사람의 육신도 결국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인간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영혼’의 존재는 신비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영혼을 지닌 인간만이 죽음을 거쳐 부활할 수 있는, 우주 안에 다시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신비스러운 존재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동안은 소중한 줄 모르다가 놓쳐버리면 그 순간부터 아쉬워한다. 건강도 그렇고 젊음도 마찬가지이다. 알고 보면 이 순간의 존재 그 자체가 행복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작 이런 사실을 알고 행복해 하며 살까. 대부분의 경우 무지개를 좇는 소년이 되어 살아가기에 말이다.

주변에 ‘말기암’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시는 분이 있다. 그분의 말씀인즉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이 금싸라기처럼 보배롭단다. 그분의 해맑은 미소 안에서 살아있다는 자체가 환희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 순간만은 이 세상에 존재한는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져 올 뿐이다.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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