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아마존 가는 길

2008-07-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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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단기 사역지는 아마존이다. 상파울루는 직행편이 있지만 우리 팀이 향한 곳은 마나우스. 비행기를 세 번씩 갈아타고 도착한 공항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짐이 나오지를 않는다. 가장 중요한 치과장비가 몽땅 실종이다. 트렁크 네 개에 소독기와 이동식 치과장비, 주사기, 약품 등을 쌌다가 풀었다가 무게 때문에 개인용 짐은 최소한으로 줄였는데…. 적도 부근의 마나우스는 열대 기후라 후덥지근 온몸이 땀에 젖어온다. 당장 환자를 치료할 일이 난감하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기도뿐이다.

하나님, 옷가지가 든 가방은 까짓 거 안 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치과 장비는 보내주셔야지요. 인디오 주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쩝니까? 하나님이 짐 좀 찾아주세요! 이튿날, 다른 팀원의 티셔츠 두 개를 얻어서 함께 간 12세 아들, 이삭과 하나씩 갈아입었다.

불편하고 불친절한 공항에 새벽 1시에 다시 나갔을 때였다. 아! 반가워라! 짐이 왔다!


인디오 마을은 다시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버스에 실려 덜컹거리는 길을 5시간 정도 들어간 곳에 있었다. 그 깊숙한 마을에 일본계 3세 사또 목사님이 섬기는 현지인 교회가 있다. 근처 학교 교실을 빌려서 간이치과를 열었다. 브라질은 110V를 사용하니까 변압기가 필요 없다. 그동안 선교 나갈 때마다 무거운 변압기를 들고 다니느라 얼마나 팔 빠지게 힘들었는데 이 정도면 다행이고 감사하다. 시차도 LA와 3~4시간뿐이라 훨씬 수월하다.

주민들의 치아상태가 엉망이다. 입안을 들어다 보니 치료 받은 흔적이 전혀 없다. “마을이 생긴 뒤로 의사를 처음 봅니다.” 사또 목사님의 설명이다. 내 오피스라면 살릴 수 있는 치아도 여기서는 단순하게 뽑는 일밖엔 해줄 수가 없다. 한두 번에 끝날 치료가 아니니 인디오 주민들에게 신경치료를 시작할 수가 없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이를 빼기 시작했다. 치과 보조사로 따라간 이삭은 연신 나를 도와서 한번 쓴 기구들을 소독하고 환자에게 솜을 물리기도 하고 준비한 통에 빼낸 치아를 담는다. “아빠, 저 할머니는 이가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 또 빼면 식사를 못하잖아요?” 빼낸 치아가 그득 담긴 통을 들고 선 아들에게 내가 말했다. “이 없으면 잇몸이란다.”

저녁 때는 함께 가신 임동선 목사님의 집회가 이어졌다. 연로하신 목사님의 여행길 걱정은 기우이다. 말씀을 전하시는 85세 목사님은 청년이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특별한 힘이다. 현지인들이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실로 감격이다.

밤이 깊어 일행은 초등학교 교실에 요를 깔고 잠을 청한다. 딱! 아얏! 딱! 곳곳에 모기 잡는 소리! 모기 전쟁! 떠나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고 말라리아 약을 먹고 있는데도 열대지방의 모기는 모기장을 뚫고 들어와 밤새 우리를 괴롭혔다. 상파울루로 이동하여 한인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빈민지역을 찾아가 치료도 했다. 어느 한인 선교사 가정은 10년 전, 부모 잃은 현지 어린이 삼남매를 입양하여 모두 틴에이저로 키워냈다. 각각의 자리에서 소명을 받은 대로 순종하는 사역자들을 만나는 것이 또한 선교지 방문의 기쁨이다.

2주간의 사역을 끝내고 다시 LA로 돌아오는 길. 당장 내일부터 밀린 환자 스케줄이 빽빽하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다. 낯익은 LA국제공항. 아무리 기다려도 짐이 안 나온다. 치과장비 외에 땀과 먼지로 걸레가 된 옷 보따리까지 여섯 개. 또 짐이 실종이다. 그래도 괜찮다. 내일 당장 쓸 것이 아니니. 하나님, 저희 팀 모두 잘 다녀왔습니다. 제 사무실을 대신 지켜 주시느라, 하나님 바쁘셨지요? 저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들을 잘 보고 돌아왔습니다. 놀라우신 주님!

김 범 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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