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탈북동포와 한인교회

2008-07-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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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을 가득 채워 버린 갖가지 이데올로기, 구호, 정책, 프로그램 심지어는 법령 따위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을 도외시 할 때 공허한 소리를 내는 괭가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이른바 북한인권법이 연방 의회를 통과했을 때 그 정치적인 저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반가웠던 것은 북한 주민과 탈북한 동포들의 구체적인 ‘인간 조건’이 공론화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 법은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이 온다면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설레었었다. 북한 인권법에 대한 소문 때문인지 북한에서 탈출한 동포들이 하나 둘 미국에 들어왔고 몇 명에게는 정치적 망명의 지위가 주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의 망명정책은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인지 초강경 대북정책을 포기한 부시 행정부에게 북한 난민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가는 듯하다. 특별히 핵협상에서 진전을 보이게 되자 남한을 통해 도미한 탈북자는 망명 신청을 할 수 없다고 이민국이 결정했다. 대북정책 변화에 따라 이미 만들어 놓은 법의 해석이 바뀌는 것을 보며, 애초 탈북자 정치망명 허용의 북한인권법 조항은 대북한 엄포용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탈북자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탈북자지원회의 로버트 홍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탈북자들은 한반도라고 하는 실험실에서 부시 행정부의 실험용 돼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남한을 통해 들어온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망명을 결심했다고 말해 남한 출신인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로버트 홍 변호사, 제이크 정 변호사 부부, 김동진 목사 등이 주축이 된 탈북자지원회는 지난 6월말 탈북자 돕기를 의논하는 포럼을 개최했는데 그 준비 과정에서 LA 기윤실도 뒤에서 거들었었다. 거기에서 탈북자들은 그들에 대한 교포사회의 냉담함에 대해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표시했다.

청중 중에 한 분은 LA의 수많은 교회가 탈북자 한 가정씩만 입양하여 책임지고 정착을 도와주어도 200명 남짓한 탈북자의 수발을 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런데 패널에 나오신 한 목사님은 바로 이 자리에 큰 교회 목사님 한 분이라도 참석하신 분이 있느냐고 질문하면서 교세 확장이나 교회 선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에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한 한인교회의 모습을 질타하였다. 질의자로 발언권을 얻어 연단에 나온 한 탈북자는 이른바 통곡기도회를 주최하신 목사님을 찾아갔다가 자기 교회는 탈북자 개인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고 하여서 실망하고 돌아온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가슴을 쳤다.

북한에 대한 크리스천으로서의 책임을 생각하면, 항상 바로 옆에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사역하셨던 예수님이 떠오른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배고픈 자들에게 떡을 주셨다. 그리고 “가장 작은 사람 하나를 대접하는 것이 바로 나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북한 사역도 먼 북한이나 중국의 정책보다는, 가까이 있는 미국의 탈북자 정책에 대해 말하고, 무엇보다 이곳 LA에서 힘들어 하는 탈북동포들의 정착을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북한 사랑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않는 지름길일 것이다.

박 문 규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날대학 학장)
(기윤실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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