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까마귀의 교훈

2008-07-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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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뒷마당에는 담장을 따라 전나무 몇 그루가 서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까마귀 한 가족이 가장 높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키우곤 합니다. 한국인인 저에겐 흉조인 까마귀가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미국인들은 까마귀를 길조라 여긴다는 말에 한해, 두해가 가다보니 그냥 그들이 우리의 삶의 일부인양 익숙해졌고, 올해도 어김없이 까마귀 한 가족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지난 6월 말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유달리 까마귀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뒷마당에 나가보니, 새끼 한 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잔디에 앉아 있고, 주변 담장 위에서 어미가 새끼를 보면서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딱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새끼는 날기엔 아직 어리고, 둥지에 다시 올려주기는 불가능하고…. 게다가 월드비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아빠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 애완용 동물 외의 살아있는 동물 접촉기피증(특히 새, 또는 쥐, 다람쥐 등)임을 모르는 둘째 딸아이까지 따라 나와 말했습니다. “야! 애기 까마귀다, 우는걸 보니 배고픈가 보다, 밥 주자. 나는 밥 준비할 테니 아빠는 쟤 둥지나 만들어 주세요.” 그러더니 인터넷을 뒤져 까마귀 식단 레서피를 뽑고 냉장고를 뒤지는 것이었습니다.

딸애의 극성에 저는 거부감을 참으면서, 라면상자에 풀을 깔고, 어미의 엄청난 괴성 속에서, 그 새끼를 둥지에 집어넣었습니다. 어미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라면 상자를 놓아두어 모자(모녀?) 상봉이 항시 가능하도록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출근 전에 새끼 까마귀의 상태를 살피고, 먹이를 주는 분주한 아침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딸애는 까마귀의 동태를 식구들에게 수시로 문자 메시지로 보고하여 우리를 까마귀 신드럼에 빠뜨렸습니다. 새끼 까마귀는 잘 자랐고, 뒤뜰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아는 듯 소리 내 울기까지 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7월 첫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갑자기 “딱!” 하는 소리와 어미 까마귀의 심상치 않은 소리에 놀라 뒷마당으로 뛰어나가 보니, 어미 까마귀가 죽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뒷마당 너머 미국인이 시끄러운 울음을 참다못해 비비탄 총으로 쏜 것이었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죽은 어미를 마당 한 구석에 묻어 주고는 걱정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라면상자의 새끼는 우리가 먹여 살린다지만, 나무 위 새끼들은 졸지에 굶어 죽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고민 끝에 야생동물보호단체에 연락했으나 주말이라 출동할 사람이 없으니 월요일에 전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틀 새, 모든 것이 정리되어 버렸습니다. 어미 잃은 라면상자 안의 새끼가 목청껏 계속 울어 대더니 조용해져서 보니까 그만 죽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분명 어미의 죽음이 새끼의 죽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듯했습니다. ‘자기가 더 잘 돌보지 못해서 새끼가 죽은 것 같다’며 훌쩍거리는 딸아이를 겨우 달래고 그날을 접었습니다.

주일날 아침, 더 힘찬 까마귀 울음소리에 눈을 떴는데, 어미 까마귀가 남은 새끼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죽은 어미보다 덩치가 좀 작은 다른 어른 까마귀였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어미 잃은 까마귀들을 다른 어른들이 키워주는 것이 까마귀의 습성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새라고, 흉조라고 무시했던 그들이 그렇게 대견해 보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오늘도 부모를 잃고, 절망 속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어린생명들이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만물의 영장,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곧 보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의 고통 받는 어린이들이 힘찬 날개짓을 하며 둥지를 날아올라 새 삶을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도약의 순간을.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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