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싱가폴과 한국

2008-07-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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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싱가포르 수상 이관유씨의 자서전 ‘싱가포르 이야기’가 집필 3년만에 출판된 해가 1998년이었습니다. 필자는 그 다음해 한국어 번역본이 나오자마자 LA에서 주문해 읽었습니다. 같은 해에 한국인이 중국인 언론인이 감수했다는 등소평의 전기 ‘붉은 별 등소평’도 읽었습니다.
당시 세계의 지성들은 아시아를 끌어 올린 세 사람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다시 떠 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세 사람은, 중국 인민을 모택동의 공산 이념의 족쇄를 풀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중국을 개방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등소평, 그리고 인구 300만의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를 세계 일등국가로 부상하게 한 이관유, 그리고 식민통치와 동족간 전쟁으로 후진성을 면할 수 없었던 한국을 ‘새마을 운동’으로 일으켜 세운 박정희 등이었습니다.
이관유의 ‘싱가포르 이야기’는 자서전이기 때문에 그의 신념을 가감없이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레이시아 연방의 중국 접경 영토였습니다. 조수가 낮을 때 554 제곱킬로미터 정도의, 제주도 두 배만한 크기의 싱가포르에는 75%인 200만이 넘는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3만개가 넘는 섬들이 있고 거기에는 1억이 넘는 말레이시아인, 이슬람 교도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면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인의 바다에 떠 있는 중국계 주민들의 작은 섬’이었습니다. 국토의 70%가 늪지대인 싱가포르는 친말레시아인 세력, 이슬람 세력, 그리고 중국 공산주의자 세력이 함께 들끓는, 주말레이시아 영국군에 대한 생필품 조달이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보잘 것 없는 나라였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바닥이었고, 중국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파업과 테러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오죽하면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통해 자국으로 침투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파업과 테러를 차단하기 위하여 싱가포르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잘라내어 버렸을까요. 싱가포르는 그렇게 억지로 독립국가로 잘라내침을 받은 나라였습니다. 그 때가 1965년 8월이었습니다.
이관유 수상은 그때로부터 25년만에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시아 국가, 기업하기에 가장 편한, 정직하고 깨끗한 선진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무지했던 국민을 깨우고, 정직성을 국가의 기본틀로 세우고, 공산주의의 테러와 파업을 몰아내고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보석,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우뚝 세웠습니다. 그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강대국 지도자들에게도 굽신거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국민을 위해 변함없는 신념으로 일했습니다. 저는 지도자를 따르고 밀어준 싱가포르 국민들과 관료들을 부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 독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요즘 서울의 현실을 보면서 약 10년 전 읽었던 ‘싱가포르 이야기’를 되짚어 보게 됩니다. 지금 서울은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야기된 국민 거부감을 촛불시위로 이끌고 이제는 반정부 시위로 변모하게 하는 좌경화 파업꾼들, 그들의 손에 ‘흔들리는 의식’으로 동조하는 젊은이들, 이에 편승하여 충동질하는 언론, 국민의 눈치나 보는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유가 상승 속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노동조합들, 아직 국민에게 겸허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정부 여당 지도자들에 의해 보기 민망한 현실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거기엔 진정 국가를 생각하는 이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불행이 여기에 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이 아닌, 한국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민족 지도자가 되어 줄 순 없을까요? 그는 이미 대통령입니다. 국민의 눈치나 보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가진 대통령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송 순 태
(해외동포 원호기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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