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타타타!

2008-06-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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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는 분별이나 판단을 하지 말고 항상 주시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주시는 진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거기에 있었고, 또 그 순간, 삶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 그가 남긴 존재와 인식에 대한, 불교적 메커니즘의 심오한 통찰이 엿보이는 불멸의 교훈입니다.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1908년 태어나, 20세기 사진계의 최고봉으로서, 전설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사진을 단순한 기록에서 시적 영상미의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사진계의 톨스토이로 추앙 받는 위대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앙리 까르띠에 쁘레송. 대상에 대해 완성된 그의 ‘결정적 순간의 미학’은 조작되지 않은 절대 비 연출의 순간을 포착해 내는 스냅사진 기법으로써,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는 그 찰나에, 자연스러운 순간의 참모습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무엇보다, 사진작가는 경험에 의해 축적된 정보로 오염된 주관 즉, 색안경을 벗고, 정화된 눈으로 대상을 주시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는 일찍이 불교에 매료되어, 세계를 해석하고 인식하는 불교적 직관력을 그의 사진작업에 습합시킴으로써, 사진계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평생 그의 정신적 지주이며 스승이었던 티벳의 한 스님에게로 돌아가, 그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숨을 거두어들입니다.

타타타(Tathata). 고대 인도의 문장어인 산스크리트어로써 한자로는 여여라고 번역됩니다. 여여란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해탈의 경지를 표현한 불교 용어가 ‘여실지견’입니다. 여실지견이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것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그것은 아무튼 불교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여실지견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산을 만나면 그 산이 되고, 물을 만나면 그 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 타타타의 모습을 멋지게 그려낸 어느 선사님의 절묘하고 기막힌 법문이 있습니다.

절을 품은 산들은 한껏 푸르고 산꽃들은 저마다 기세가 등등한데, 산새 소리 솔바람 타고 풍경을 희롱하는 어느 농익은 봄날. 선사의 법문이 막 시작될 참에, 활짝 열린 법당 문으로 이름 모를 산새 한 마리가 날아듭니다. 법당 안을 파닥대며 돌던 새는, 선사 앞에 놓인 법상의 모퉁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어지간히 앙증맞은 그 새는 짹짹거리며 치켜든 머리를 까불대는데, 경계의 눈빛이 바쁩니다. 모두들 새를 쫓으려는 생각은커녕, 오히려 새가 놀라 날아갈 새라, 숨을 죽이고 꼼짝을 않습니다. 다만, 그 새의 몸 놀이 하는 양을 지긋이 바라만 볼 뿐입니다.

새는 모이를 쪼는 시늉을 몇 번 내다, 폴짝거리며 찻잔이 놓인 곳으로 다가가서는, 찻잔의 뚜껑 위로 가볍게 뛰어 오릅니다. 그러나 두 발이 미끄러지자, 새는 날개 죽지를 재빨리 파닥여서 겨우, 몸의 균형을 잡습니다.

한 데, 곧 이어 꼬리를 살짝 낮춘 새가 그만 찔끔, 한 방울의 무른 똥을 떨어트립니다. 그러고는 세상사 아랑곳없다는 듯, 무심하게도 후드득 날아가 버립니다.

잠시 아쉬운 침묵을 선사께서 잔잔하게 깨십니다.
“오늘 법문은 여기서 마칩니다.”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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