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쿤밍의 할렐루야

2008-05-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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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단기 선교를 다녀온 중국 쿤밍은 아름다운 곳이다.

북경에서 비행기로 3시간. 쿤밍에서 조선족, 한족 대학생들을 섬기는 2박3일의 수련회를 마치고 다음 사역지인 소수민족 부락으로 가는 길은 캄캄한 밤이었다.

현지에서 집합한 선교팀 일행과 함께 작은 버스에 올라타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에 몸을 맡긴다. 길고도 험한 산길은 자꾸만 좁아지고 계곡은 깊어지는 것 같다. 차창 밖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피곤한 몸은 자꾸만 눕고 싶다 한다. 벌써 지치면 안 되지. 내일 아침부터 사역이 시작되는데…. 졸린 눈을 부비며 나 자신을 격려하면서 버스에 흔들리기를 또 3시간. 마침내 버스가 멈춘 곳은 작은 교회 앞마당이다.


치과 장비랑 다른 짐까지 가득 실은 차 안은 좁아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휘발유 냄새에 시달리며 왔는데 이 밤에 누가 우리를 맞으랴. 어서 짐을 내리고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하려던 일행은 밤이 깊었는데도 교회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묘족의 환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어가 다른 민족, 생긴 모습도 다른 사람들, 묘족은 유난히 음악에 큰 재능을 받은 사람들이라 했다.

짐도 내버려둔 채 일행이 교회당 안으로 들어서자 곧이어 그들의 찬양이 울려 퍼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묘족의 찬양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다. 마지막 곡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4부로 나누어 주님께 올려지는 할렐루야 찬양은 사람의 귀에도 더없이 아름다운 화음이 되어 중국 땅 깊은 산 속, 오월의 밤하늘로 올라갔다. 피아노도 없고 현악기도 없다. 오래된 아코디언 반주 하나로 이들이 할렐루야를 부르는 동안, 나는 은혜에 젖어 온몸으로 주님을 느꼈다. 감사, 또 감사!

이튿날 아침, 진료가 시작됐다. 함께 가신 분들이 헌신적으로 치과 일을 도왔다. 내가 불평했던 낡은 버스는 사치였다. 묘족 노인들과 어린이, 청년 모두 어젯밤 산길을 걸어서 왔다고 했다. “아픈 이를 모두 빼주세요!” 나에게 하소연한다.

입 속을 들여다보니 환자들마다 빼야 할 치아가 한두 개가 아니다. 윗니 전체를 모두 다 빼야하게 생겼다. 스무 개 정도 남은 치아 중에 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여럿이다. 상태가 엉망이다. 더 심한 환자를 만났다. 신경 치료까지 하려면 두어 시간은 걸릴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긴데 한 사람만 계속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시간이 모자라서 어렵겠습니다.” 간단한 처치만 해주고 다음 사람을 치료했다.

드디어 환자가 끝난 것 같다. 긴장했던 어깨를 펴며 내가 말했다. “아까 못해 드렸던 그 분을 다시 불러 주십시오. 아직 오후 해가 남아 있으니 치료를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모여든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그의 모습을 찾았으나 이미 자기 마을로 돌아가 버렸다 한다. 어찌나 마음이 안쓰러운지, 다시 한 번 나의 한계를 깨달으며 반성했다.


묘족이 불렀던 합창곡 악보에는 음표가 없다. 오선지 대신 1-3-7-4 하는 식의 숫자로 음의 높낮이를 안다. 어느 선교사가 만들어 주었다는 고유문자는 우리 눈에 무슨 기호처럼 보인다.

나의 귀에는 지금도 묘족의 할렐루야 합창이 들린다. 실망한 마음으로 돌아갔을 그 환자가 언젠가 그 마을에 찾아올 또 다른 선교팀의 의사를 만나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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