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북한에서 본 하늘

2008-04-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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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후 세대에 속한다. 초등학교에 갈 때는 이미 복구가 끝난 수도 서울에서 철없이 뛰어놀았다.

평양에서 병원을 하시다가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버려두고 혈혈단신 남하하신 부모님은 날마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으로 긴 세월을 보내셨다. 피난민의 강한 생활력은 강하다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기댈 언덕 없이 삶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의 강요된 선택일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투쟁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끈질긴 생활력으로 다시 공부를 하셨고 마침내 다시금 서울 한복판에 병원을 내셨다.

나라 전체가 가난하기 짝이 없던 60년대, 환자들은 치료비 대신 밀가루 같은 것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아버님은 북한 피난민 출신 환자들에겐 치료비를 받지 않고 집에 있는 물건을 오히려 내주셨다.
부모님 가슴에 묻힌 고향땅에 대한 그리움과는 아랑곳없이, 나는 서울식 표준어를 쓰고 서울식 개인주의를 마음에 키우며 자랐다. 내가 전쟁을 겪은 세대에 대하여 눈을 뜬 것은 한편의 소설을 읽은 다음부터다. 전쟁을 다룬 대표적 영화들, 플래툰이나 7월4일생 같은 영화를 보고도 실감하지 못했던 아픔이 이혜리씨의 ‘할머니가 있는 풍경’을 읽은 후로 나의 가슴에 진하게 새겨졌다.


자신의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주변 취재를 통하여 전쟁이 개인의 삶에 어떤 상처를 내는가 하는 문제를 가족 중심으로, 한없이 따스한 시각을 잃지 않은 채 그려간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북한 땅을 그리워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처음으로 헤아려 보았다.

지난 주에 북한에 다녀왔다. 이번에 북한의 병원을 가면서 나는 이미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내 핏줄’이라는 말이다.

내가 그동안 가장 사랑한 의료 선교지는 아프리카였다. 동일 지역으로 계속 나가면 현지 사정도 더 잘 알게 되고 사역도 연결되는 장점이 있다. 이번 북한 사역팀으로 나를 불러주신 한 선배 닥터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땅끝 어디든, 선교 다녀오면서 받는 은혜가 크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들이 정말 불쌍해요.”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 말도 다른 그들을 봐도 그렇게 좋은데‘ 북한에 가서 나와 똑같이 생기고 나랑 똑같은 말을 하는 ‘내 핏줄’을 치료해 주면 얼마나 더 좋겠나? 함께 가세.”

이번에 각과 의사들로 팀을 이루었던 만나선교회(텍사스)는 북한에 수년 전 이미 병원을 세우고 의료장비와 의술, 약품을 전달하는 등 구체적인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다.

우리 팀은 빵 공장과 국수 공장, 과학기술대학도 방문하고 현지 병원에서 환자도 보고 현지 의사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오는 6월 개원을 앞둔 라선시 신흥인민병원은 만나선교회로부터 CT 스캔 등 고급 진료장비를 지원받았다.

앞으로 미주 내 1.5세, 2세 의사들이 계속 방문하여 의료장비를 이용한 선진의술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핏줄’과 함께 북한 땅에서 보낸 며칠 동안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맑았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날을 기다리고 싶다. 천국에 계시는 아버지께 북녘 하늘이 맑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김 범 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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