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눔의 행복-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들

2008-04-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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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IRA 반군들이 저를 잡아갔습니다. 울면서 저를 데려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엄마는 그 자리에서 살해되었고, 저는 눈을 가린 채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반군대장의 일곱번째 아내가 되어 5년 동안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12세이었습니다.”

지난 2007년 우간다 북부 굴루(Gulu) 지방에서 만났던 소녀병사 리디아의 이야기입니다

“그들과 지내면서 밤에는 반군대장의 성노리개로 살았고, 낮에는 물건을 나르거나, 군수품을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때로는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축에 들었습니다. 다른 여자 아이들은 밤마다 수많은 병사들을 상대해야 했고, 급식도 항상 맨 꼴찌여서 굶기 일쑤였습니다. 5년 전 함께 잡혀 왔던 아이들이 한 명씩 안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저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 그곳에 더 있었으면 저도 그 아이들처럼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정부군과의 전쟁 중에 극적으로 탈출하여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소년소녀병 재활보호소’에 도착하였을 때 리디아는 임신 9개월이었고, 그 곳에서 아이를 분만하였습니다. 월드비전이 수소문해 찾아낸 리디아의 이모가 아이를 키우게 되었고, 리디아는 아직도 정신적·육체적 재활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록 재활교육이 끝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끔찍했던 악몽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3월말, 유엔은 ‘전 세계 사람들이 더 귀를 기울여야 할 10가지 이야기’를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그 속에는 리디아와 같은 소녀병사 문제뿐 아니라, 매년 100만명 이상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말라리아 문제, 우간다 북부와 아프가니스탄의 평화구축 문제, 1,500만명이 넘는 무국적자들의 신분확보 문제,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문제, 전 세계 기상이변 문제, 유엔 인권위원회의 효과적인 개입 문제,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 문제 등이 포함 되었습니다.

유엔은 이 10가지 이야기들을 발표하면서 서두에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TV, 인터넷 등 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21세기를 살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뉴스의 초점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 그 시간에도 이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파장이 미국을 비롯 전 세계의 경제를 침체국면으로 몰아가고, 그 여파가 가계에도 영향을 끼쳐, 이렇게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경제 공황까지도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주변을 돌아보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엔은 그것을 호소한 것일 겁니다.

월드비전 총재를 역임했던 그레엄 어바인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문구를 제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The best things in the worst time’,

즉,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들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요구되는 과제는 소외된 그들에게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들을 담으십시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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