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2008-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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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절망케 하는가. 여기, 죽은 자가 바람이,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산 자를 위해 부르는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있습니다.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거기에 나는 없어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 갈래의 바람이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저 광활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햇살이 되어 밭을 비추고/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고/ 아침에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우고/ 저녁엔 별이 되어 당신을 지킵니다.’(일본 작가 아라이만의 일어 번역을 한글로 번역한 것임)
이 작자 미상의 영어로 된 시는 이미,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장례식이나 추모식에서 널리 애송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소설가 아라이만이 우연히 이 영시를 접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내용에 감동과 충격을 받아, 일본인들의 정서에 맞게 번역한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는, 2006-2007년도에 걸쳐, 그야말로 ‘천 갈래의 뜨거운 바람이 되어’ 전 일본 열도를 그 열풍에 휩싸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시의 작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습니다만, 아라이만은 한 인디언 추장의 비석에 이 시가 새겨져 있는 점으로 미뤄, 북미 대륙 원주민의 애니미즘 즉, 만물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상에서 비롯된 시가 아닌가 짐작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언젠가는 도리 없이 죽게 마련인 인간들에게 사후의 문제만은 실로, ‘답 없는 답을 찾는’ 인간의 영원한 화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태어나 살면서 죽음을 예지하고 또한, 그 앞에서 절망하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들은, ‘영원한 생명’과 ‘내생’의 신비를 종교를 통해 구현하고 확신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불교 교학은 뭇 생명들의 사후 존재의 당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릇,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물론, 인간의 마음까지도 변화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죽음 역시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이며, 따라서 죽음은 죽는 자에게 다른 조건이나 상태로 가는 문이 된다.’
‘또한, 인간에게 삶의 동기를 유발 시키는 강력한 동력인은 욕망이며, 그 중에서도 모든 욕망의 원천이 되는 것은 살고자 하는, 존재에 대한 욕망이다.’
‘하물며, 임종을 맞는 자는 살고자, 죽을 힘을 다하여 고독한 사투(?)를 벌인다. 이승에서 뿜어내는 최후의 욕망, 이 무섭도록 강력하고 응축된 욕망의 에너지가 죽는다고 해서 육신과 함께 간단히 사라지겠는가.’
‘생전에 쌓은 업(카르마)의 잠재된 세력에 휩싸인 채, 욕망의 에너지로 표현된 그 마음(의식)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육체로부터 방출되어, 자신이 지은 업의 조건에 부합되는 변화를 위해 전변의 문을 나선다.’
마음의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염력이나 마음의 이동이라는 ‘텔레파시’가 증명하듯, 모든 것은 마음이 가진 엄청난 능력 때문입니다. 마음은 광활한 우주를 자유로이 날아다닙니다.
그러므로 산 자여!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거기에 나는 없어요/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 갈래의 바람이 천 갈래의 바람이 되어….’

박 재 욱 (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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