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왜’대신 ‘어떻게’라고 묻자

2008-02-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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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원치 않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Why?” 하며 신음한다. 불행한 일이 생길 때마다 “Why me?” 하며 탄식한다. Why me라는 말속에는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악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항변이 섞여 있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 해보아도 해답은커녕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머리만 더 복잡해지고 삶의 의욕은 꺾이게 된다. 왜, 왜, 왜라는 질문에 매달려 한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왜’라는 질문에 매달리는 사람은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고 “왜 사고가 났을까” 하고 분석만 하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람과 같다. 사고 발생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친 몸을 치료받는 일이다. 그 다음은 사고 난 차를 고치는 일이고 또 그 다음은 사고를 통하여 배운 교훈을 삶에 적용하는 일이다. Why라는 질문을 통해 삶의 문제에 답을 얻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본래 ‘왜’라는 질문을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왜 난 장애인이 되었을까?”하는 질문을 한다고 할 때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 난 못생겼을까?” “난 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 “왜 난 태어나서부터 몸이 약할까?” “왜 나는 돈 버는 재주가 없을까?” “왜 나는 머리가 나쁠까?”라며 ‘왜’라는 질문에 빠져 있으면 사람이 부정적이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변명거리를 찾아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환경적인 이유에 있다고 책임 전가를 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존재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9장에서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라고 가르치신다. 그것이 행복의 비밀이라고 말이다. ‘왜’라고 묻는 사람은 불행을 호출하고 ‘어떻게’라고 묻는 사람은 행복을 초청한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물으라는 말이다. 제자들은 장애의 원인이 죄에 있다고 단정하고 장애의 원인을 물었지만 예수님은 ‘어떻게’로 답을 하셨다. 즉 “어떻게 장애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라고 물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건강해야, 학식이 있어야, 권력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크리스천들까지도 복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래야만 행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돈이 없어도, 건강을 잃어도, 권력을 잃어도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가르치신다.
‘왜’라고 물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왜’는 과거지향적이고 ‘어떻게’는 미래지향적이다. ‘왜’는 부정적이고 ‘어떻게’는 긍정적이다. ‘왜’는 소극적이고 ‘어떻게’는 적극적이다. ‘왜’는 파괴적이지만 ‘어떻게’는 건설적이다. ‘왜’는 책임전가이고 ‘어떻게’는 책임의식이다. ‘왜’는 더 많은 숙제만을 던져주지만 ‘어떻게’는 해답을 안겨준다. 아담이 사탄의 질문 즉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한 줄 아니?”라는 질문에 속아 실패한 것처럼 ‘왜’라는 질문은 실패로 가는 물음이고 ‘어떻게’라는 질문은 성공으로 가는 물음이다.
하나님은 우리인간들에게 ‘왜’라고 질문할 권리를 주시지 않은 것 같다. 그 질문은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0개월이 남은 2008년에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 ‘왜’ 대신에 ‘어떻게’라고 질문하며 삶의 변혁을 꾀해 보자. 생각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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