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한 생각에 온 우주를

2008-02-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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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장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 있을 수 있는 기적일 것이다.’
대문호 괴테가 모차르트를 두고 한 말입니다. 오래 전 상영된 바 있는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의 적수이며 그의 독살설에도 연루된 바 있는 살리에르가, 우연히 모차르트가 쓴 교향곡의 악보를 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곡이 아름답고 훌륭해서이기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곡이 단 한 번도 수정된 흔적없이 단숨에 씌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최초의 음표가 오선지에 떨어짐과 동시에, 이미 마침음표를 머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생각에 전체를 갈무리해 버림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은 실로, 경이로운 경지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을 말합니다. 한 찰나에 삼천대천세계, 즉 온 우주를 손아귀에 말아 쥐고, 한 생각에 온갖 현상들을 두루 갖추어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견고한 고정관념으로 무장된 범부들의 의식과 경험의 한계를 고양된 직관력으로 극복하고, 무한히 확장된 정신적 자유를 체득한 자 만이 볼 수 있는 경지라고 합니다.
일념에 삼천을 보는 선사들은 그 말로써 말할 수 없는 경지를, 곧 잘 선필과 선화로 풀어냅니다. 몰아의 경지 속에서, 번뜩이는 선적 기운과 터질 듯 밀도 높은 공력을 한 점 붓끝에 모아, 일필휘지로 휘몰아 내리거나, 또는 한 번 찍은 먹물로만 그린다는 일필화를 일순, 거침없이 펼쳐내 보이기도 합니다.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선화에 관한 일화입니다. 경기도 여주 고을 낙향한 박 대감 댁에, 스님인지 속환이인지 알 수 없는 초라한 행상의 과객이, 어느 날 해거름에 불쑥 나타나, 자신을 환쟁이라 소개하면서 몇 날을 묵고 가고자 청을 넣습니다. 행색으로야 거지나 진배없는 꼬락서니라 해도 얼핏, 스쳐 간 그 화공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마음에 밟혀, 그 댁 마님은 헛간 쪽에 딸린 토방이나마 내어 주도록 집사에게 이릅니다.
이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오래 전에 마름질을 끝내고 마땅히 부탁할 화공이 없어 묵혀 뒀던 빈 병풍에, 그림이나 넣어 보도록 화공에게 주문합니다.
식객으로 들어앉은 날로부터 그 화공은, 떠꺼머리 총각 하인 녀석에게 항아리에다 먹을 갈아 가득 채우도록 하고는, 대뜸 술부터 청합니다. 그러고는 들이미는 곡기는 띄엄띄엄 챙기면서, 밤낮 없이 마시고는 자고, 깨서는 빈둥대다 또 마시고는 널브러지기를, 보름이 넘도록 되풀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아침나절까지도 토방 쪽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싶어, 하인이 토방 쪽엘 다가가 보니, 방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방안엔 화공도 그의 작은 흔적마저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먹물을 담았던 항아리에는 웬 대나무 빗자루만 덩그러니 꽂혀 있었습니다. 윗목 쪽으로 눈을 돌리자, 벽을 따라 병풍이 펼쳐져 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가히, 살아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뿌려져 있었고, 별들은 은하수가 되어 어디론가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박 재 욱(로메리카 불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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