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피가 있을 것이다’

2007-12-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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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있을 것이다’

석유와 돈과 권력에 미친 대니얼이 유정탑에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다.

‘피가 있을 것이다’

대니얼이 아들과 함께 석유가 매장된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황량한 석유밭에 펼친 대서사시

세상 등진 인간 혐오 한 남자의 ‘석유 집념’
고독한 삶과 투쟁 그린 160분간의 걸작

20세기 문턱의 중가주 석유 밭을 무대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탐욕과 권력 그리고 석유와 종교에 관한 황량하도록 아름다운 대하 서사극이다. 요즘 시의에도 맞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반사회적이요 인간혐오자이며 파괴적이요 음험한 석유에 집념하는 대니얼이라는 남자다.
영화는 거친 대자연을 무대로 드라마를 엮어가면서 이 인간을 증오하는 자기 파괴자인 남자의 인물과 성격 묘사를 날카로운 메스로 개구리를 해부하듯 했는데 인간 탐욕과 증오심과 고독과 광기의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해 몸서리가 쳐진다.
영화의 극단적인 내용과 인물, 탈수증에 걸릴 것 같은 깡마른 풍경 그리고 내리 누르는 듯한 극적 중압감과 불길하고 휩쓸어가는 음악 또 2시간40분이라는 상영시간 및 대니얼 역의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무시무시하도록 맹렬한 연기 때문에 거의 중노동을 한 것 같은 몸살감을 느끼게 되는 걸작이다. 여자는 묘사되지 않는 남자의 영화이기도 하다.
1898년 광야의 갱에서 은을 캐는 대니얼의 곡괭이소리로 시작되는데 전반 15분 정도는 이 곡괭이 소리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전자음 외에 거의 대화가 없다. 그는 이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다. 이어 1911년. 소규모의 은과 금과 석유 채굴로 어느 정도 돈을 번 대니얼은 어린 아들 H.W.를 데리고 본격적 석유 채굴에 나선다.
그는 중가주의 깡촌에 석유가 많이 매장돼 있다는 정보를 얻고 목적지로 간다. 그리고 신심이 강한 시골 가족의 땅을 싼 값으로 임차, 석유를 파기 시작한다.
대니얼은 여기서 석유 노다지를 캐내는데 이 장면이 ‘자이언트’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한편 H.W.(딜론 프리지어가 경탄스런 연기를 한다)는 10세 때 유정탑 폭발사고로 청각을 잃는데 이때부터 대니얼로부터 무정하게 괄시를 받는다.
대니얼의 삶을 혼란시키는 두 사람이 극 중간에 나타난다. 하나는 대니얼이 땅을 빌린 집 주인의 젊은 아들로 카리스마가 있는 복음 전도사인 일라이(폴 대노가 교활하고 강렬한 연기를 한다).
다른 하나는 느닷없이 대니얼 앞에 나타나 자기가 대니얼의 의붓형제라고 말하는 낙오자 헨리(케빈 J. 오카너). 제목이 말해 주듯이 대니얼이 증오하는 모든 인간들에게는 피가 있게 되는데 그의 인간 혐오증이 광적으로 폭발하는 마지막 장면은 진짜로 겁이 난다. 거의 혼자서 석유를 캐내다시피 한 대니얼은 이번에는 대니얼의 땅을 노리는 석유재벌 스탠다드 오일과 1인 싸움을 벌인다.
영화의 종결부는 거부가 된 대니얼이 마치 ‘시민 케인’의 케인처럼 거대한 저택서 혼자 칩거하며 세상과 인간에 등을 돌리고 사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 클라이맥스에서 성장한 H.W.가 마침내 대니얼을 버리고, 과거 대니얼을 단죄한 일라이가 쫄딱 망한채 대니얼에게 찾아와 징징대며 구조를 요청하면서 유혈 폭력이 일어난다.
상처가 난 황량한 자연을 찍은 촬영이 눈을 찌르는데 특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은 데이-루이스의 괴물 같은 연기. 이상한 어조로 말을 하면서 마치 자기가 자신의 심장을 파먹는 듯한 처절한 연기를 한다.
업턴 싱클레어의 소설 ‘석유!’에 바탕을 뒀다. 감독은 ‘부기 나츠’와 ‘매그놀리아’를 만든 젊은 폴 토마스 앤더슨. 집념적이요 강렬하고 또 천리안적 안목과 가슴을 지닌 연출력이 놀라울 뿐이다.
R. Paramount Vantage. 일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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