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요”

2007-12-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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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주(코너스톤 상담센터)

내과 의사의 권유로 한 30대 여인이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그녀는 한달 동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죽만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상담하는 50분 내내 한 손에는 탄산음료를 들고 놓지 않았다.그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먹고 자주 체하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일반 음식물조차 먹을 수 없도록 목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응급실에 가서 고통을 호소하기를 몇 번, 그러나 종합검진 결과 신체상의 문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달동안 20파운드에 가까운 몸무게가 빠지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혹시 이러다 ‘죽는 것 아니겠지’하는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고 했다. 그녀는 왜 그녀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눈시울을 적시기 시작했다.그녀는 내가 본 불안장애 환자 중 가장 심각한 상태여서 매주 2번씩 상담소를 찾게 했다. 그녀는 현재 나이드신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미혼이고 한 직장에서
장기근무한 결과 경제적 면에서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고 일상생활에서도 불안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3개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불안증세와 우울한 감정들을 일으킨 것으로 보였으나 그녀는 상담사를 경계하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 감정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그녀의 심한 불안증세는 약물치료 병행은 필수였고 또한 심리치료를 받고 난 후 매번 30분 정도 심리이완 치료도 병행해야 했다. 예를 들어 호흡운동, 근육이완, 명상운동...).

본격적인 심리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그녀의 어린시절 성장 배경부터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1남2녀 중 장녀로 성장했고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심한 우울증 때문에 동생들을 돌보는 책임이 주어졌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두 동생들의 대학 학비 조달을 하며 어머니를 모시면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며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빈 자리를 지적하자 말문이 막힌듯이 아주 큰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에겐 가족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픈 과거가 13살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상담 비밀보장을 여러번 확인한 후에 그녀 가족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학교 학생시절에 같은 또래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어린 나이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폭행을 거의 매일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보호자인 엄마나 학교 선생님께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이유를 묻자 절망적이고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도움을 청한들 문제의 해결보다는 상황만 더욱 악화될 것이라 믿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남자친구의 협박 또한 도움의 손길에서 그녀를 멀어지게 한 듯 하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폭행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어린시절 너무나도 두렵고 절망적인 감정들이 그대로 생생하게 상담시간을 통해 표정과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서 그녀의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억눌렸던 아픔들이 위로와 치료를 받게 되었다.여기서 우리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도대체 왜,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아픔을 눈치채지 못했나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장 근본적인 보호장치인 가정은 이미 어려서부터 제 기능을 할 수 없었고 또한 심각한 가정불화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쉬쉬 하고 덮고 넘어가는 것을 보고 배운 결과, 그것을 그녀는 불행히도 자연스럽게 대물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명의 남자들과 연애를 했지만 모두들 한결같이 그녀의 경제적인 힘에 의존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말다툼과 폭행이 오가게 돼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이런 반복적인 감정적, 육체적 학대 속에서 그녀의 자동 방어체계는 무너져 이제 더 이상 작은 스트레스의 자극조차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숨막힐 것 같은 책임감과 가슴 답답증은 어려서부터 풀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아온 불만과 괴로운 감정들이 더 이상 담아둘 곳이 없자 음식조차 삼키지 못하게 될 정도로 쌓여온 스트레스들이 신체 이상 반응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가정폭력/불화(감정적, 신체적, 경제적 억압과 잘못된 자녀양육), 알콜중독, 도박중독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성인들이 그들 부모의 생활방식을 대물림하는 것을 볼 때 정말 마음이 아프다.상당수의 그들은 성장 이후 가정폭력의 또다른 희생자가 되어있거나 아니면 가해자가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며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난 정말 우리 부모님처럼 살기 싫었다고...”
성인이 된 우리의 삶 속에서 혹시 건강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대물림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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