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 마지막 인사

2007-11-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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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을 만나던 날도 비가 내리더니 헤어지는 날도 역시나 비가 내린다. 서둘러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에 아침부터 분주히 가방을 쌌다. 마음으로는 며칠만 더 머물다 가면 아버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여유 없이 돌아가는 인생이기에 더 지체할 수 없는 것이 괜히 서글프다.
아침 일찍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침식사를 거의 드시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계신 아버님을 보았다. 당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호스를 이리저리 꼽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버님, 식사를 왜 이것만 드셨어요. 더 드세요. 제가 먹여 드릴께요” “아니다. 나중에 먹을께. 치워놔라” 잠시 침묵이 흘렸다. 목이 메여 말을 못하고 괜히 아버님의 누우신 자리를 봐드리고 있다.
“오늘 가제?” “네” “안사돈께 안부 전해라” “네” “아이들 잘 키우고 건강해라 알았제?” “네” 나도 뭔가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말문이 꽉 막혀서 고개를 숙이고 아버님 옆자리에 앉아 있다. “아버님”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개를 들어 아버님을 보니 누우신 채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계신다. 따뜻한 아버님의 손을 잡았다.
“아버님,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인사인 것 같아요. 아버님 모습, 따뜻한 손, 저에게 주신 사랑만 기억하고 갈께요. 우시지 마세요.”
깊이 패인 눈가 주름의 골짜기 위로 눈물이 계속 흐르고 계신다. 말씀을 잘 못하시니 며느리에게 뭐라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 못하시고 웅얼웅얼 거리시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눈물을 닦아 드리며 “아버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싶은지 다 알아요. 아버님의 마음이 저에게 전해 졌어요. 힘드시니까 말씀하시지 마세요.”
어린아이처럼 나를 바라보시고 우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으려 참고 또 참았는데 드디어 눈물조절 신경이 폭발을 해 버렸다.
“어여 가라. 아범 기다린다. 비 오니까 조심히 가” “…” “가, 어여” “아버님,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저의 마지막 소원 잊지 마세요. 아버님, 안녕히 계세요”
눈을 감으시면서 내가 가는 모습을 보지 않으신다. 눈가에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보면서 일어서는데 이것이 아버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란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아버님을 꼭 안아드렸다. 너무 작아져버린 몸과 앙상한 뼈만 남은 아버님의 모습이 지난 25년간의 외로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씨 집안에 시집 와서 아버님을 부양한 적도 시집살이를 한 적도 없이 이렇게 아버님을 떠나보내게 해드려 너무 죄송합니다. 아버님을 이해하기보다는 내 아이들을 먼저 이해했고, 아버님을 생각하기보단 내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고, 아버님을 사랑하기보단 내 아이들을 먼저 사랑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며느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아버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시댁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향하는 차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이 왜 그리도 미련해 보이는지 언제나 이렇게 할껄, 저렇게 할껄. 껄껄껄 인생을 사는 나에게 깊은 자숙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내가 미국으로 돌아온 뒤 아버님은 한 달 반 후에 막내며느리의 마지막 소원을 숨을 거두시기 12시간 전에 들어주시고 천국으로 가셨다. 지금쯤 먼저 천국으로 가 계신 친정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계시겠지?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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