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악마가 네 죽음을 알기 전에’

2007-10-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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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네 죽음을 알기 전에’

앤디(필립 시모어 하프만)와 동생 행크(왼쪽)가 빗나간 범죄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악마가 네 죽음을 알기 전에’

갈수록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는 행크(이산 호크)가 불안에 떨며 전화를 걸고 있다.

강도 공범 두 형제 “제발 파멸만은…”
사건 전 나흘, 사건 후 1주간 스토리

노련한 연출솜씨로 시종일관 긴박감
하프만-피니 연기 뛰어난 멜로드라마

뉴욕을 무대로 한 경찰과 범죄영화를 잘 만드는 베테런 시드니 루멧 감독(83)의 노련한 솜씨가 돋보이는 흥미진진한 범죄 멜로드라마다. 형제간의 경쟁의식과 부모와 자식 간의 불화 그리고 돈에 대한 탐욕과 치정과 마약과 살인이 난마처럼 얽힌 옛날 스타일의 범죄영화로 불안과 긴장감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질식시킬 듯이 옥죄인다.
치명적인 우행을 저지르는 관계에 앙금이 있는 두 형제가 강도의 공범이 되어 멸망의 구덩이로 빠져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마치 희랍 비극을 보는 듯하다. 영화는 제목이 있는 챕터식으로 진행되면서 중심사건 전 나흘간의 얘기와 그 뒤 1주일간의 얘기를 보여준다. 이런 서술이 시간의 급박성을 부채질한다.
배는 좀 나왔지만 강건한 체구의 앤디(필립 시모어 하프만)는 커브가 진 몸매를 한 아내 지나(마리사 토메이)에게 집착하는 뉴욕 부동산회사의 봉급담당 매니저. 관객은 서서히 그가 사치와 마약 값으로 회사 돈을 횡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앤디의 동생 행크(이산 호크)는 평범한 봉급쟁이로 전처와 어린 딸이 있는데 딸 양육비가 석 달 치나 밀렸다.
영화는 처음에 앤디와 지나의 격렬한 섹스 신에 이어 ‘강도의 날’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뉴욕 교외의 작은 보석상에서 강도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강도가 잘못 돼 복면을 한 강도와 가게 여주인이 모두 죽는다. 밖에서 대기하던 공범이 차를 몰고 도주한다. 이 운전자가 행크이고 죽은 자는 행크의 친구. 돈에 쪼들리는 행크에게 보석상 강도를 시킨 자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앤디인데 행크는 형수인 지나의 정부다. 앤디와 행크의 부모는 오랜 결혼생활을 해온 사이인데 아버지는 앤디에게 애정을 표시하지 않아 앤디는 아버지에 대한 한을 품고 있다.
두 형제의 강도사건은 현장에서 사망한 제3의 공범의 산전수전 다 겪은 아내로 인해 노출되기 시작한다. 이를 막으려고 앤디와 행크는 안간힘을 쓰나 시간이 갈수록 둘은 점점 탈출구가 없는 깊고 검은 늪 속으로 빠져든다.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앤디와 행크가 어떻게 해서든지 법망을 피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처절하다. 여기에 앤디의 아버지(알버트 피니)가 일종의 범행 수사자로 등장하면서 앤디 가정의 고뇌와 좌절감은 극점에 이른다.
튼튼하게 짜여진 플롯이 배배 꼬였는데 그것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아주 민완하다. 긴장감을 한 순간도 이완시켜 주지 않는 인간 우행이 낳은 비극 드라마로 모든 연기진이 뛰어나다. 특히 하프만과 피니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제목은 아일랜드인들이 토스트 할 때 쓰는 말 ‘악마가 네 죽음을 알기 전에 반시간 동안 천국에 있기를’에서 따왔다. R. Think.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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