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가지 여행

2007-08-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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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가족끼리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늘 휴가 때도 쉬지 못하는 엄마를 둔 아들은 방학만 되면 으레 제 아빠와 단 둘이서 여행 일정을 짜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곤 했는데 미뤄졌던 에스크로가 끝나 홀가분히 동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무심코 스치던 일간지 여행사 광고를 스크랩하면서 어렵게 일정을 맞춰보았다. 여행이란 언제나 설렘을 선사하는지 점점 무거워지는 여행 가방 싸느라 밤을 설쳤다. 아침잠을 줄여가며 검색 대열에 끼여 짧지 않은 다섯 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내린 순간 미풍에 실린 향긋한 바람이 잘잘한 스트레스를 무조건 잊게 했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떠날 수도 있는 것을 꼭 떠날 일정을 잡아놓으면 멀쩡하던 딜이 꼬여지는 바람에 번번이 포기했던 기억이 스친다. 여행사에서 모여진 일행과 그렇게 짐을 찾으며 환영 푯말을 찾는데 생각보다 나이 많으신 분의 무뚝뚝한 표정이 기내에서 몇 시간을 설치던 기분을 순간 접게 만들었다.
얼마나 벼르다 선택한 휴식 같은 여행임을 그는 모르겠지만 며칠간의 이 아름다운 인연이 반갑지도 않은지 일상적인 멘트로 안내를 시작했다. 부드러운 유머를 섞어가며 지루하지 않게 일정을 꾸리는 가이드도 있건만 본인 말만 앞세우는 딱딱한 풍경 설명은 일행들의 편안한 대화조차 끊기게 했다.
좀 편안한 가이드였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은 앞으로 묶여진 정해진 일정 내내 동행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으리라. 와이키키 해변 바로 앞 호텔에 뷰가 멋진 호텔이라면서 일행들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 위치한 호텔 룸이라 문 열면 앞 건물 베란다밖엔 보이지 않았다.
애써 여행 기분 살리려 각 여행사마다 가격 경쟁이 심해 그럴 수 있으려니 하며 이해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됐지만 투숙한 호텔과는 동떨어진 후미진 곳에서의 쿠폰식사에서부터 기분은 언짢아졌다. 첫 날부터 무조건 강요하는 옵션 여행에 여러 번 망설이다 몇 개를 신청하면서 생각보다 비싸게 붙여진 요금에 그래도 서비스가 다르려니 하며 자위했다. 야경이 화려한 해변을 지나 한 밤에 벌어진 서커스는 소련인의 멋지고 정교한 묘기를 볼 수 있다는 설명에 기대를 안고 따라갔지만 막상 입구에서 보니 일인당 거둔 입장료가 실제의 가격과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래도 VIP석이려나 하는 기대를 가져 봤지만 막상 극장 맨 왼쪽 윗자리에 줄줄이 앉은 다음엔 어이가 없었다.
그 다음 날 리무진을 타고 스노클링과 해안을 둘러본 서비스도 실제 가격보다 일인당 두 배 이상을 붙여놓았다. 아무리 돈을 쓰려고 간 여행이라지만 여행 안내서에 일인당 하루 정해진 팁을 달라고 했으면서 옵션마다 더블로 불거진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다녀가면 또 언제 올까 하는 생각인지 고객을 단지 옵션 팔기 위한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듯 보였다. 친절하지도 않은 가이드에 그 다음 일정은 모두 자유롭게 다니는 것으로 마무리했지만 당연스레 일정표에 적혀진 팁을 주는 것도 망설이게 하는 가이드의 태도에 자기 직업에 성실해 보이지 않을 때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 것인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저 가족과 함께 있었다는 그 하나로 아쉬움 접은 휴가에 제발 제철 맞은 바가지 상혼은 없었으면 한다.
속아도 알고 속는 게 훨씬 덜 억울하기 때문이다.
(562)304-3993
카니 정
콜드웰뱅커 베스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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