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녀가 실패할 때

2007-07-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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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지난 7월 17일 퇴근 후 큰딸 사라와 발병원에 갔다 집에 들어와 막 앉아서 쉬려는데 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해 혹시 다치기라도 했나 해서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보았다. “엄마! I got in! I got in! Thank you Jesus! Oh, my God!” 하면서 영국 런던에 위
치한 ‘Capital Saint Martin College of Art and Design 에서 입학 허가서가 왔다고 눈물과 웃음이 섞인 얼굴로 딸은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고 웃었다 울었다 한다. 나도 덩달아 눈물도 나고 기쁘기도 하고, 한참 후에나 우리는 안정을 되찾았다.

벌써 7월도 중순이 되고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장은 이미 파장하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작년에 원하는 대학에 지원했는데 다 거절당하고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다른 도시의 한 대학에서만 입학 허가가 나왔는데 절대로 그 대학은 안 간다고 버티고 올해에도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미안하지만 받아줄 수 없다는 정중한 편지만 계속 날라왔다.교육청에서 일하고 모든 학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을 가진 내가 정작 나의 자녀는 대학을 2년이나 못 간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앞이 캄캄하고 “사라 어느 대학 갔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태연한 척 하며 “회사에 다녀요” 해야 했지만 항상 씁쓸한 기분이었다.


대학에 가는 길은 막혔었지만 다행히 그동안 틈틈이 토요일과 방학동안에 Parsons School of Design과 FIT에서 제공하는 고등학생을 위한 패션 클래스와 잡지회사와 패션회사에서 방과후 주중 이틀씩 몇년간 인턴으로 일한 경험과 남편이 경영하는 이스트빌리지의 빈티지 뷰틱의 단골 고객이었던 바바리 코트로 유명한 런던 포그 회사의 헤드 디자이너의 소개로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그 후 회사가 합병하는 관계로 모든 디자이너 팀이 교체되어서 탐 브라운이라는 울트라 모던한 정장을 만드는 아방가드한 가장 촉망되는 디자이너 회사로 옮겼다.

참고로 이 회사는 브룩스 브라더스와 삭스백화점, 바니 백화점에 판매하는 탑 어브 더 라인인 정장 회사인데 모든 제조과정이 요새 드물게 다 뉴욕에서 이루어져서 제조과정 바닥서부터 옷감 선택과 의상 제작에 필
요한 부속을 사입하는 거래처와의 정보와 위치, 봄과 가을의 패션쇼와 바이어를 위한 모든 라인 시트 제작과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모든 진행사항에 참여로 남편 말을 빌리면 ‘돈 받고 공부하는’ 좋은 실경험이 됐다.

미국에서 24년을 산 나와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먼저 원하는 회사에서 일 좀 하다가 대학을 가도 괜찮고 그 방면에 뛰어나면 현재 활동하는 유명한 디자이너들 중에도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일한 경력으로 탑 디자이너가 된 사람이 미국에는 비일비재하다고 아무리 나를 설득해도 나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딸의 친구들이 집에 와도 항상 가슴 한곳에는 내가 서포트를 잘 못해줘서 우리 딸이 대학에 못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정작 내 딸에게는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고 자책하는 시간도 많았다.

이번 5월이 지나고 6월이 지나 다른 학생들은 거의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우리 딸은 처량하게 회사만 다니는게 측은해서 우리 부부는 시간 나는대로 회사가 위치한 공장지대인 롱아일랜드시티로 딸을 뻔질나게 픽업하고 데려다 주었다.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 한곳에는 하나님께 감사가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딸이 대학에 못 들어간 후 난 정말 이 세상 모든 재수하는 부모들의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와~ 이런 심정들이겠구나...

어려서부터 별 말썽 없이 특수반에 들어가서 하이스쿨도 라과디아에 아무 어려움 없이 들어가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그린 그림이 뉴욕시에서 선발한 12명에 끼어서 우리 애가 예술대학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실패를 경험했다.이 실패를 통해서 우리 딸은 인생의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고 실패한 자를 이해하는 폭이 넓은 인간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대학의 귀중함을 깨닫고 열심히 공부할 것이며 원하던 대학에서 감사하며 공부할 것이다. 나 또한 다른 부모의 절박한 상황을 들을 때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며 기쁜 마음으로 도울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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