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동산 일기 천문대에 남은 그리피스의 꿈

2007-05-17 (목)
크게 작게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LA의 여름은 그리피스팍에도 뜨거운 햇살을 싣고 찾아온다. 지난겨울 유난히 비가 적었던 탓에 산은 아직 말라 있어 목이 타다. 산에 오르면 이민족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백인들의 모습은 간간이 보일 뿐, 산등성이는 이미 타인종의 전시장이다. 멕시칸들이 나누는 스패니시 대화가 산길을 따라 속속 들려오는 가운데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안들은 물론 러시아와 인도 그리고 유대인까지 모두 합세해 미 합중국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각자의 다른 음식과 언어로 여름 휴일, 한나절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피스팍의 여름으로부터 신록의 숨소리를 듣는다. 재활의 몸짓과 부활의 신호를 바라보는 곳, 한 때는 멕시코 땅, 잃어버린 땅을 향해 범선을 타고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 전사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피스팍을 기증했던 그리피스경은 지난 1850년에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나 10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LA 한인타운 북쪽 산자락에 보이는 할리웃 사인과, 둥근 지붕의 모습을 한 거대한 흰색 건물이 바로 그의 유산인 셈이다.
그 건물이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이고 그 주변 산 전체가 그리피스팍(Griffith Park)이다.
그리피스팍의 총면적은 4,210에이커, 미국에서 시립공원으로는 가장 넓은 규모다. 대부분이 그리피스가 기증한 땅으로 1896년에 개장했다. 그 안에 동물원, 경마장, 골프장, 야외 음악당(Greek Theater), 천문대, 할리웃 사인, 그리고 70여개의 등산 코스가 있다. 그리피스는 땅뿐 아니라 현금 70만 달러도 기증했다.
그리피스 천문대와 야외음악당이 그 자금으로 운영되었다. LA시는 그리피스가 남긴 뜻에 따라 LA의 일반 시민들이 돈들이지 않고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그리피스팍을 만들었다. 그리피스 대령은 1800년대 멕시코 은광 개발과 캘리포니아 금광 그리고 이어서 남가주 지역의 부동산 투자로 일약 부동산 재벌로 등극한 인물이다.
군대와는 전혀 무관했던 그가 대령의 호칭을 받은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돈키호테 기질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또한 술주정뱅이로도 유명했다. 그런 연유로 LA시 의회에선 그의 기부를 받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대형시립공원에 대한 그의 구상은 유럽 여행 당시 국립공원들을 둘러보면서 얻어졌다. 1896년 12월16일 그는 3,000에이커의 란초 로스 펠리스 땅을 LA 시당국에 기증하면서 본인의 이름을 따서 공원을 지어 줄 것을 희망했다. 또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윌슨 마운틴의 천문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면서 인간에게 폭넓은 꿈과 희망을 안기는 광활한 우주를 품는 순간의 신비감을 맛보았기에 천문대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이다.
1912년 12월 12일 그는 10만 달러를 천문대 건축 경비로 기증했다. 당시로선 큰 돈이었다. 그의 의지는 1930년 봄에 천문대를 설계하는 드림팀이 결성되면서 시동이 걸렸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33년에 윌리엄 심슨 건설사가 공사의 첫 삽을 뜨는 날, 드디어 실행에 옮겨졌다. 마침내 1935년 5월 14일에 그리피스팍 중턱에 초현대식 천문대가 공식 오픈되면서 시민들을 위한 환상의 천문대는 탄생했다. 부동산의 유산이 천문대의 꿈으로 실현되는 순간, 그가 눈을 감은지 정확하게 16년 만의 일이었다. 오늘 밤, 공원 산불에 속절없이 타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
“그리피스여, 이 땅에 영원하라-.”
(213)590-5001
luxtrader@naver.com
김준하
<윈 부동산 기획실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