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장에서 ‘집의 추억’

2007-04-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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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문제가 불거진 후 한 달 이상 시간이 흐르면서 부동산 시장에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바로 융자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터라 포텐셜 바이어들에게 최근 융자의 어려움에 대하여 설명 드리고, 이미 에스크로를 오픈한 손님들에게는 크레딧 점수 유지와 가능한 한 다운 페이먼트를 많이 할 것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한 손님에게 문제가 생겼다. 여유 자금은 있으셨지만 혹시 모를 비즈니스를 위해 남겨 두시고 노다운으로 융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크레딧 점수 700 이상에 집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걱정을 안 하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마지막 순간에 융자를 못해 준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쉽게 융자가 나왔을 텐데 요즈음에는 은행마다 많은 서류를 요구하고 특히 노다운이나 5% 다운은 서류를 까다롭게 보기 시작해서 마지막 시점에 융자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우리 손님 역시 할 수 없이 10%의 다운을 하고서야 2주 늦게 에스크로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이 분의 경우는 그래도 자금이 있으셔서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바이어들은 융자를 못해 거래가 취소되고 계약금까지 빼앗길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얼마 전 복잡한 딜 하나를 끝내고 학창시절 한국에서 자주 듣던 한 가수의 콘서트가 이 곳에서 열린다고 해서 들뜬 기분으로 보러간 적이 있다. 한 곡 한 곡 열창의 무대가 이어질 때마다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같이 따라 부르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발견한 것은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단순히 그 가수의 노래가 좋아서 만이 아니라 그 노래가 지나온 세월, 즉 과거를 연상시키며 어렴풋이 간직되어 온 ‘추억’이라는 단어를 가슴속에서 끌어내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잊고 살았던 모든 것, 다시 한번 그 당시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혼을 해서 설레었던 일, 아이를 낳아 즐거웠던 일, 첫 집을 사서 행복했던 일 등등.
부동산업에 종사하다 보니 다른 일보다는 유난히 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1년을 살았던 10년을 살았던 누구에게나 집에 대한 좋고 나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2004년 말에 집을 파시고 타주로 이사 가신 분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신문광고를 보시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집을 파실 때도 에이전트가 아니라 아들같이 대해주셔서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분들이셨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름 아닌 그 분들이 35년이나 살아오셨던 그 집에 관한 추억이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5만달러 정도에 집을 사셔서 60만에 파신 경우인데, 미국에 이민 오셔서 힘들게 일해 처음 집을 사시고 자녀 셋을 키워서 그 곳에서 모두 출가시키고 손자손녀 재롱까지 보시며 가꾸어 오신 그 집은, 처음 오는 사람들이라도 집안 곳곳에 그 분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추억이 배여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잘 간직되어 있었다. 자녀들이 직장일로 타주로 가는 바람에 관리하기 힘들어져 파시게 되었지만 이사 가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분들의 아쉬운 표정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러한 집을 거래할 때면 나도 모르게 이 집에 애정을 갖고 대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요즘 주변에는 너무나 많이 집 때문에 힘들어 하는 가정의 얘기를 접하곤 한다. 처음에는 이분들도 새 집을 장만하고 그 집을 통해 자산을 늘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를 바랐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특히 최근에는 가격이 상승하자 무리하게 여러 곳에 투자해 그만 그 집마저도 포기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 분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 왠지 씁쓸함을 갖는다.
여러번 반복해 말하지만, 집은 투자 대상 이전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세상의 비바람으로부터 지켜내고 안식을 주는 보호막 이라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집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으며 먼 훗날 나의 과거를 바라볼 때 좋은 노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간직한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818)357-7694

에릭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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