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기 바람 뒤에는 아찔한 하락

2007-02-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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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으면 골이 깊을 밖에. 지난 부동산 상승기에서 가장 과열됐던 대도시 외곽 신흥 도시들이 지난 2005년 여름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이번 침체기에서 가장 쓰라린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미전국 대다수 지역이 전반적인 주택경기 하락을 겪고 있지만 이 지역 홈 오너들에게는 타 지역의 부진도 전혀 위안거리가 못된다.

이번 주택 하강기에 가장 타격 큰 지역은
‘사자’열기 뜨거웠던 신개발 외곽도시들
기존 교외지역보다 가격·판매 하락폭 커
리버사이드/샌버나디노 판매량 40% 격감

개발의 망치소리가 요란했던 시절과는 달리 신규 주택건설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가격 하락과 거래량 감소는 여타 대도시 교외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 투기에 가까운 붐이 일었던 버지니아주 루던 카운티. 워싱턴 DC에서 35마일 떨어진 외곽 베드 타운 루던 카운티의 주택 평균 가격은 2006년중 11%나 떨어졌다. DC가 소재한 알링턴 카운티 주택의 하락폭이 2%인데 비하면 이 곳 홈 오너들의 고통은 심하다. 한 주민은 루던 카운티의 “집값이 일년반 전에 비해 보통 10만달러는 떨어졌다”고 한숨을 내쉰다.
홈 오너에 따라서는 가격 하락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거래량 감소. 자금은 말랐는데 팔려고 내 놓아도 도대체 집이 팔리지가 않아 가슴이 탄다. 버지니아주 부동산 협회에 의하면 루던 카운티의 경우 매물이 팔려나가는 기간이 지난해 12월중 평균 101일이 소요됐다. 기존 주거지역인 알링턴 카운티의 경우 평균 재고기간이 72일인데 비해 한달 이상 더 걸렸다.
떠들썩한 개발과 신축 붐이 일었고, 이에 편승해 바이어와 투기꾼들의 ‘사자’ 열기가 뜨거웠던 외곽 신흥 타운들이 이번 하강기에 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은 캘리포니아도 마찬가지.
남가주의 대표적인 개발 지역인 샌버나디노, 리버사이드 카운티 지역 신흥 도시들의 주택 시장은 싹 바뀌었다. LA가 전반적인 주택경기 퇴조 속에서도 지난 12월 주택 중간 가격이 일년 전에 비해 5.8% 상승하고, 거래량은 14.5%가 줄어든 것은 리버사이드 샌버나디노 외곽도시 주민들이 보기에는 부럽기 짝이 없는 수치다.
같은 기간중에 이 지역의 주택 가격은 3.9% 미미하게나마 상승했지만 판매는 40.6%나 크게 떨어졌다. 가격은 억지로 버티고 있지만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아주 싸늘하다. 거래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LA 다운타운에서 80마일 떨어진 ‘하이 데저트’ 지역도 가격 1.3% 상승에 판매량은 39%가 줄었다.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는 주된 원인은 과공급. 주택경기가 좋던 시절 주택건설업체들은 빈땅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집을 지어 현재 주택시장은 초과 공급 상태다. 도시와 교외지역등 기존 주거지역은 집들이 이미 들어차 새로 지을 공간이 없어 과공급 현상은 야기 되지 않지만 신흥 개발 도시에서는 초과공급으로 인한 경기부진이 심각하다.
이 지역 부동산 에이전트들은 쌓여있는 매물을 소진시키기 위해 진력하는 모습이나 빠른 기간내에 매물이 소화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인랜드 지역의 한 에이전트는 “새로 지은 집들과 기존 주택 매물이 경쟁을 벌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신축 주택 재고는 쌓여 있어 소화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버사이드의 한 에이전트는 “언젠가는 새로운 바이어들이 들어와 쌓인 재고를 줄여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투자목적으로 집을 매입했던 많은 홈 오너들이 파산하여 집을 내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에이전트는 주택경기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없지는 않지만, 만약 오른다면 꾸물꾸물 상승할 것이고 내린다면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표적인 투기지역으로 꼽혔던 플로리다주의 대도시 외곽 신개발 도시들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많은 주택 건설업체들이 집값이 급등하자 이 외진 곳에서도 주택 수요는 대단하다고 보고 집을 마구 지었으나 그것은 한갓 허상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지금 뒤늦게 깨닫고 있다. 고용이 뒷받침 되지 않고 쉴 수 있는 오락과 여가 시설도 불충분한 지역에서 지속적인 주택 수요가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잘 못이었다. 투기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 남은 것은 쌓인 매물과 재정난 뿐.
한 주택 건설업체 대표는 “지난 3년여 동안 사람들이 집을 활발하게 매입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주택수요를 자신하고 집을 지었는데, 많은 경우 매입은 실수요가 아닌 투기꾼에 의한 것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발 붐에 편승해 외곽으로 나갔던 홈 바이어나 건축업체들 모두 이번 겨울의 골은 험하고 깊다.

<케빈 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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