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어는 끊기고… 렌트라도 줘야지

2007-01-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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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10층 고급 콘도타워 분양 사무실 밖에는 ‘세일 중’ 배너가 나부끼고 있으나 찾아오는 고객은 없다. 비즈니스를 사실상 접은 지가 오래됐다. 이 콘도 개발업주는 180유닛 럭서리 콘도를 팔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6주가 지나도록 겨우 이삼십명이 다녀가는데 그치자 아파트로 바꿔 렌트 주기로 마음을 정했다. 비싸게 콘도를 지어 건설비에도 못 미치는 렌트를 받고 아파트로 임대해야 하지만 콘도로는 팔리지 않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팔리지 않는 콘도를 붙들고 있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임대용 아파트로 전환하는 케이스는 워싱턴 메트로 지역에서만 거의 6,000여유닛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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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붐이 일던 시절 병원에서 콘도로 개조됐던 워싱턴의 한 고급 콘도. 지난 2004년 전매차익을 노리고 이 콘도의 2베드룸 유닛을 샀던 한 투자자는 지금 손해를 보고 팔든지 아니면 비용에도 못 미치는 렌트를 받고 세를 주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단독주택 최악은 지났다는데, 콘도 냉기는“점점 더”
콘도건설업체들, 손해 감수하고 임대 아파트로 전환
단기차익 노렸다 발목 잡힌 투자자들도 진퇴양난


뜨겁게 달아올랐던 전국의 많은 콘도시장은 2006년 중반 이후 붕괴됐다. 워싱턴뿐 아니라 라스베가스, 마이애미, 보스턴, LA 등 콘도 붐이 뜨겁게 일던 지역들이 곤두박질쳤다. 콘도를 사기 위해 바이어들이 텐트를 치고 밤을 샜던 열기는 사라지고 판매는 거의 끊기다시피 줄었다. 매물 재고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등하던 가격은 잘해야 그대로, 대부분은 떨어졌다.
은행들도 콘도 건설업체에 대한 융자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착공하기도 전에 유닛의 절반 이상을 처분하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게 급변하자 콘도 건설업체들도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모습들이다. 마침 아파트 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 비싸게 지은 콘도지만 일단 아파트로 임대하여 콘도시장의 공급과잉 상태가 해소될 때까지 최소한 2~3년간은 버텨보겠다는 것이다. 일부 업체들은 오래된 빌딩을 콘도로 전환하던 중에 다시 임대 아파트로 복귀하는 촌극을 빚기도 한다.
마지못한 선택. 아파트로 전환하는 것이 전망이 밝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아파트를 지을 때보다 콘도는 건설비가 훨씬 많이 들었고, 아파트 렌트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콘도를 아파트로 렌트 줬을 때 이익을 내기에는 모자란다.
더욱이 콘도들이 대거 아파트로 전환되면 상승세인 아파트 렌트도 한풀 꺾일 가능성이 높아 콘도업체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렌트를 받아 봐야 콘도 건설비를 커버하기에는 부족하고 아파트로 다시 디자인하는 데는 추가로 돈이 든다. 마지못해 전환하기는 하지만 남는 장사는 결코 못된다.
콘도시장은 전통적으로 단독주택시장보다 경기에 취약하다. 빠르게 달아오르지만 냉각도 빠르다. 콘도 매입자들이 실 거주용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취득하는 경우가 단독주택에 비해 많고, 많은 도시에서 건설이 단독주택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콘도시장의 이런 특성 때문에 단독주택 시장은 이젠 최악의 상태는 어느 정도 벗어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콘도시장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워싱턴 포기 바텀 지역의 넓은 2베드룸 콘도를 87만9,000달러에 시장에 내놓은 한 콘도주인. 전매차익 수십만달러는 너끈히 건질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2004년 이 콘도를 샀던 주인은 지금 손해를 감수하고 팔 작정이다. 89만달러는 받아야 본전인데 오퍼는 80만달러에서 84만달러 사이에서 들어오고 있다.
매각이 어려워지자 세를 줄 생각도 해봤지만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콘도를 세 줄 경우 월 렌트는 4,000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모기지 이자와 관리비, 보험, 세금 등을 감안한 콘도 실제 비용은 6,800달러로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나 콘도 소유자들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 ‘어떻게 손해 보느냐’ 밖에 없다.
조금씩 조금씩 손해 보든지(렌트), 아니면 한 번에 손해를 보든지(매각) 둘 중 하나다.
과잉공급으로 시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워싱턴 지역의 경우 2006년 말 매물 재고는 2만4,200유닛. 2005년 초 1만3,000유닛에서 매물이 두배 가량 늘었다. 판매는 2006년 4분기 중 663유닛. 2005년 1분기 중 3,520유닛이었던데 비하면 거의 끊기다시피 줄었다.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판매가격은 평행선을 그리고 있으나 실상과는 다르다. 아주 매력적인 물건만이 팔릴 뿐이고, 많은 오너들이 콘도를 처분하기 위해 상당 액수에 달하는 선물을 안겨서 얻은 가격일 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맨해턴 등 극소수 시장이 있을 뿐이다. 맨해턴, 그중에서도 고급 콘도시장의 경우 판매는 여전히 뜨겁다. 콘도 및 코압 판매가 4분기 중 2,441유닛으로 전년 동기의 1,574유닛보다 늘었고 재고도 5,900유닛으로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미 전국으로 보면 콘도시장의 냉기는 심화되고 있다. 단독주택보다 훨씬 심하다. 2006년 11월 현재 콘도 판매는 13.6% 감소했고(단독주택은 10.7% 감소), 매물 재고는 눈덩이처럼 쌓였다. 전국부동산협회에 따르면 콘도 재고는 무려 38.1%나 급증했다(단독주택 재고는 29.6% 증가). 전국 콘도 중간평균가격은 22만4,600달러로 일년 전과 같았다.
그러나 신축 콘도를 감안하면 실제 콘도 시장은 이보다 훨씬 더 냉각됐을 것으로 보인다. 신축 콘도 판매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현재 집계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협회는 기존 콘도 판매만을 집계하고 상무부는 신축 단독 주택 판매에 관한 자료만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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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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