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네 번의 충격

2006-08-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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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LA 공항에 처음 내려 관원과의 조바심 나는 면담을 통과하여 짐을 끌고 큰 회전문을 밀고 나오다 바로 앞 칸에 꽉 들어차 시야를 가리고 있는 집채만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길거리로 나와 보니 이 나라엔 몸을 겨우 가눌만치 뚱뚱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새로운 환경에서 크고 작은 놀라움이 있었지만 이곳에도 한국사람들이 제법 살고 있고 그들 대부분이 부지런히 교회에 다닌다는 것에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얼마 후 차를 타고 라스베가스를 가면서 깨끗하게 텅 빈 넓디너른 모하비 사막을 보고는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충격을 느꼈는데 몇 해 전에는 인터넷을 배워 한국 신문의 인터넷판에 들어가 독자의견란을 훑어 보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있는가 했는데 요즘은 때로 한국이나 이곳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조차 엇비슷한 충격을 받고 산다.
이러한 갖가지 충격들이 때로 나를 일깨우기도 하고 의기소침하게도 했는데, 내가 그동안 이러한 자연이나 사회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하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가능한 바깥 부분이라면 나름대로 바꿔 보려고도 했다지만 이는 내 안바탕부터 뒤집는 근본적인 시도가 아닌 소심한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2,500년도 전 인도의 싯다르타 태자는 카필라의 성문을 나가서 바깥 세상을 구경하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는데 그 첫번째가 동문 밖에서 본 꼬부랑 늙은이다. 서른 살에 가까운 어른이 노인을 처음 본 것은 아닐 테지만 그건 그 때 그의 나이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태어나 이레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의 품에서 자란 내향적이고 생각 깊은 어린 천재 소년을 염려하여, 아버지 정반왕이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주위 환경을 조성하고, 각하의 심기까지 경호하는 최정예 팀을 스물네 시간 딸려 붙이며, 수많은 무희가 밤낮 없는 환락의 무대로 눈을 어지럽혔을지라도,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생사를 그때도록 한 번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리는 없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뼛속 깊이 실감하지는 못해 왔을 뿐이다.
마지막 동전 몇 닢을 얹음으로 저울이 완전히 기울듯, ‘참나’가 누구인가를 우주의 끝까지 비추어 보며 캐물어 온 싯다르타는 차례로 성의 나머지 문밖을 나가 보고는 마무리 충격을 받는다. 남문 밖에서는 병들어 앓는 사람을, 서문 밖에서는 죽어 거적에 덮여 실려 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그런데 북문 밖에서는 맨발로 밥을 빌며 누더기를 걸쳤지만 꼿꼿한 몸가짐에 눈빛이 고요하고도 형형한 사문을 보았다. 싯다르타는 놀라 마부에게 물으니 생로병사라는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집을 나선 사람이라는 설명이었다.
사문의 이러한 행색에 질려 삼청교육대를 구상했다면 한 때의 능란무도한 권력자가 되었을 것이고, 번뜩이는 시재로 현란섬뜩한 절창을 남겼다면 몇 세대를 풍미하는 문객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은 싯다르타는 곧 출가하여 스스로 사문이 되었는데, 여섯 해 동안의 쓰라린 고행과 정진 끝에 기어코 삶과 죽음의 밑뿌리 해답을 송두리째 캐고야 말았으니, 이로써 온 중생은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영원히 꺼지지 않는 환한 등불을 얻었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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