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7세기, 신앙과 이성의 갈등

2006-05-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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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신앙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은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경험주의적 철학의 등장과 과학의 발달로 인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
과거 1천여 년 동안 모든 분야를 사로잡아왔던 기독교적 가치관들을 이제는 단지 신앙의 각도가 아닌 이성의 각도에서 재조명하려는 시도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데카르트는 근세 철학의 아버지로 불려져 왔으며 그의 대표적인 저서 ‘방법론 서설’에서 진리의 근원을 발견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체계적인 회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가 의심하고 회의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자기 자신의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데카르트와 함께 합리주의 철학의 거두로 꼽히는 스피노자는 범신론 주장을 펼쳐 인격적인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은 자연이라고 불리는 세계의 일부이며 자연은 하나님의 실체를 이룬다고 했다. 또한 스피노자는 신학은 신앙에만 관계하고 진리에는 관계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객관적 진리는 이성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진리를 소유하지 않은 교회가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 대륙에서 합리주의가 발전하고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독자적으로 경험주의라는 철학을 재구성했다. 존 로크에 의해 시작된 경험주의 철학은 모든 지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성과 더불어 경험임을 강조했다. 경험주의에 입각해 로크는 이성과 신앙은 전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성은 관념들에 의해 마음에 도달되고, 그 지각이나 반성을 사용함으로써 획득된 전제들 또는 진리들의 발견이다. 신앙은 반면에 제안자의 신용에 따라 이뤄지는 어떤 전제에 대한 동의이며, 그 전제는 특수 전달 방식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17세기 들어서며 이성과 신앙의 관계는 중세시대에 신앙이 이성을 억눌러왔던 것에 대한 반발로 양자가 조화를 이뤄나가기 보다는 이성과 신앙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들이 득세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종교회의를 통해 화형에 처해졌을 터였지만 어느덧 세상은 많이 변화됐다.
신·구교간의 30년 종교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동기였다. 대학살과 보복을 반복하며 피로 물들어진 30년 종교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며 잘못된 정의의 칼을 휘둘러대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30년 전쟁이 끝나갈 즈음 영국에서는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예정론에 입각한 개신교의 신앙고백서를 완성했다. 1647년 완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루터 이후 100년 동안 계속돼 온 개신교 종교개혁을 마무리짓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많은 개신교단의 중심 교리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 시대에는 엄청난 양의 인문 문학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가 대표적으로 창작에 열을 올렸으며, 존 밀톤의 실낙원,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같은 고전들도 이 시대에 완성되었다.

17세기의 주요 사건일지

▶ 1611 흠정역(KJV) 성경 번역
▶ 1618 30년 종교전쟁 시작
▶ 1620 메이플라워호 미국도착
▶ 164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1648 베스트팔렌 조약
▶ 1649 영국 청교도 혁명
▶ 1667 밀톤의 실낙원
▶ 1678 존 번연의 천로역정

백 승 환 목사
<예찬 출판기획 대표>
/baekstephe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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