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샌타페 트레일을 떠올리며

2006-05-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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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동부에서 서부로 대륙횡단을 하며 달려왔던 때가 생각납니다. 동부에서부터 계속 달려 텍사스주의 북쪽 끝자락을 지나 뉴멕시코 주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지평선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미국 동부에선 볼 수 없던 붉은 색 돌산들이 눈앞에 하나 가득 나타났습니다. 하이웨이 40번을 약간 벗어나자 서부영화에서 보았던 사막과 들판, 황량하고 삭막한 산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돌산들 사이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도시의 모습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가들의 도시라고 하는 샌타페(Santa Fe)였습니다. 불에 타는 듯한 햇빛을 반영하는 듯 온 도시의 색깔이 강렬했습니다. 도시 한 부분을 가득 채운 미술품 전시장인 갤러리들과 곳곳에 야외 조각들로 장식된 아름다운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은 수의 박물관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다운타운 한복판에 샌타페에 관련된 유적들이 있는 박물관이 있어서 그곳에 들렀습니다. 그 안에서 샌타페 트레일(Santa Fe Trail)에 관련된 사진과 유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황량한 자연 경관과는 너무도 다르게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샌타페란 도시를 볼 수 있었던 것은 8일 만에 3,000마일을 달리며 진행했던 대륙횡단의 큰 수확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자동차를 타면 한참을 달려가야 나타나는 샌타페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온 것은 샌타페 트레일이란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21년부터 1880년 사이에 미조리주(Missouri)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서부터 그 곳으로 상업을 위해 만들어진 길입니다. 당시 8주간이나 걸렸다던 여행, 그 당시 그 곳으로 몰려온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왔을까? 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 곳이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로 변화해서 개척자들의 모습들을 보전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서부 개척에 앞장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남겨놓은 발자취를 보며 우리 한인들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서부의 관문인 LA라는 도시로 우리 한인들이 계속해서 이주해 옵니다. 한국에서, 미국의 타주에서 이 지역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옵니다. 20년 전만 해도 한인식당과 상가가 적은 규모로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제는 한인타운의 규모와 상권이 엄청나게 커졌을 뿐만 아니라 이제 한류의 영향을 미국 주류에 전하는 일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 왔을 때부터 한동안 신학교에서 신학생들끼리 모이면 과연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이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인교회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하고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이민의 열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반이민법을 위한 시위에도 미국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함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 이민의 역사가 이제 많이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함께 이제는 우리의 위상에 걸맞는 삶의 모습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서부 개척자들이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고 정착한 것을 통하여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는 좋은 지역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지역에서 건전한 한인문화와 삶을 보이는 것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돈 벌어서 나 편리한 대로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지역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범이 되는 상도덕, 커뮤니티를 향한 공헌, 건전한 한류문화의 보급 - 이 모든 것들이 백년만 지나면 박물관에 남아 우리 LA 한인들의 모습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고 태 형 목사
(선한목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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