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편지(3)

2006-05-02 (화)
크게 작게
하루 종일 원주민들을 치료하고 나니 해가 저문다. 이곳에 오자마자 나도 시계를 풀어버렸다. 시계가 없는 곳. 야자수 나무가 만드는 그림자 길이를 보고 시간을 짐작하면 된다. 밤이면 하늘 가득히 은하수가 흐르는 곳. 숙소로 가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에는 점점이 박힌 별들이 큰 강물을 이루어 내게로 쏟아져 내린다. 4,000억 개의 별로 이뤄졌다는 저 거대한 우주의 장관이 앤드로미다 갤럭시인가? 한없이 광대하신 분, 우주의 창조자를 향하여 나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튿날 새벽, 꼬끼오오오!!! 아침을 깨우는 것은 어김없이 울어대는 닭들의 합창이다. 섬나라인 파푸아뉴기니에서도 타바 지역의 심베리(광야라는 뜻)섬에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상징물처럼 남아 있다. 식인종들이 살던 부락에서 사용하던 나무이다. 이방인이 들어오면 잡아서 대나무 꼬챙이에 끼운 다음 두 나무 사이에 걸쳐놓고 누구나 필요한 부위를 각을 떠다가 먹었다는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다. 그들이 지금은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찬양하며 성경을 공부한다니 그 세월 동안 생명을 바쳐 일하신 선교사님들의 헌신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20년 전, 홍성호 선교사 부부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컴퓨터 언어 컨설턴트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레슬리 발렌타인이라는 미국인 선교사가 풍토병을 얻어 미국으로 송환되어 가는데 비행장이 있는 곳까지 실어다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연히 이 일을 홍 선교사가 맡게 되었는데 그날 이후로 성경번역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 마음에 생겼고 금식기도 끝에 이 사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홍 선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의 섭리는 어긋남이 없습니다. 예,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이 일을 하러 들어가 보니 2년 전, 바로 레슬리 선교사가 있던 그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성경 번역이 이제는 열매를 맺어간다. 이번에 번역된 4 복음서와 사도행전 외에 신약의 나머지 부분들도 3년 후에는 완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매주 두 번씩 본부에서는 마을 깊숙이 나가있는 선교사들의 안전을 점검하는 무전 교신을 해온다. 이 때 회답이 없으면 곧바로 헬리콥터를 띄워 선교사의 생명 안전을 살펴야 할만큼 험한 곳이다.
부인 홍현숙 선교사는 원주민 여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대장이다. 누구네 집에 무슨 사정이 있든지 이제는 홍 선교사에게 뛰어와 상의를 한다. 오늘은 이웃 섬에서 우리 선교팀 일행을 환영하는 선물을 보내왔다. 방금 잡은 바닷가재와 게찜이다. 어찌나 큰지 한 손으로 들기도 무거울 정도이다. 또 다른 섬에서는 과일을 보내왔다. 달디단 파인애플이 수박 두 덩이를 합친 것만큼 크다. 목이 마르냐고 묻던 한 소년이 야자수 나무로 올라간다. 입에 짧은 칼을 물더니 하늘 꼭대기까지 키가 큰 나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맨손으로 타고 올라 수십개를 따내린다. 마을 잔치가 있으니 모두 모이라는 신호를 보내려고 한 사나이가 커다란 고동을 불기 시작한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홍선교사 부부의 막내, 슬기가 학교에서 트램폴린 놀이를 하다가 앞니 네 개가 부러졌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급히 일어나 치과 장비를 펼쳤다. 찢어진 곳을 봉합하고 부러진 치아를 다듬어 주었다. 언제라도, 어디라도, 주님이 부르는 곳이면 나는 달려가 내게 주신 달란트를 주님 위해 사용하기를 소원한다.
<치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