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어디까지 갈것인가

2006-04-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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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앞두고 상원에서 곧 풀릴 것 같은 이민법이 기대와는 달리 좌초에 부딪쳐 부활절 휴회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착잡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멕시코를 포함한 히스패닉 형제들에게 큰 실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수의 한인들에게도 안타까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적지 않은 수의 믿음의 식구들에게도 실망이 주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전국적인 반이민법 반대 집회를 통해 상식을 벗어난 반이민법의 시도가 조금은 수그러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학에서 지적하듯이 인간이 정한 법과 하나님이 정한 도덕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법을 어긴 것은 엄연히 잘못된 것이고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론과 그래도 세금을 내면서 열심히 일하였는데 서류미비라는 것 하나 때문에 범법자 취급을 하는 것은 맞지 않고 거꾸로 이번 기회에 양성화하여 사면을 시키는 것이 맞다는 동정론이 서로 대립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교회는 어디에 설 것인가? 결론은 자명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제입니다. 도피성의 역할을 해야하는 교회의 위치를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실정법에 규정한대로 따르는 정교분리의 입장에 설 것인가? 더 심각한 것은 만일 반이민법이 통과되어 교회에서도 서류미비자에 대한 거부와 고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득 몇 년전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대원들 사이에 토론하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러시아로 선교를 떠나면서 컴퓨터 10여대를 가져 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출발 전날 밤, 짐을 싸면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완제품으로 가지고 갈 경우, 세금 등 많은 비용이 들거나 빼앗기게 될 공산이 컸기에 분해해서 각자 짐에 나누어 숨겨 들어가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거짓말을 하고 숨기는 것은 죄라는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하고 세금을 내거나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떳떳하게 완제품으로 가지고 들어가자는 주장이었습니다. 몇 시간 토론 끝에 결국 완제품으로 가지고 들어가기로 결론을 내고 짐을 쌌습니다.
결과는 감사하게도 공항에서 검사하는 군인이 하도 많은 양의 짐이라서 그런지 자세히 보지 않고 그대로 통과를 시켜 주었습니다. 우리 선교팀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문제가 해결되어 통과되는 경우만은 아니라는데 우리의 고민은 있습니다.
원칙과 변칙의 경계는 어디까지입니까? 성경을 전하기 위해서 밀수를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는 일인가? 아닌가? 탈북자들을 무사히 망명시키기 위해서 서류를 위조하고 불법을 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 선교사의 비자를 연장하기 위하여 급행료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
서류미비자로 인한 이민법 지지와 반대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서류미비자의 고용문제와 불법체류로 인한 신분의 불안함이 남의 문제만은 아닌 우리 한인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생각해봐야 하는 현실입니다.
바라기는 이런 고민을 합법적(?)으로 끝낼 수 있도록, 상원과 하원에서 이민법이 통과되고 사면까지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원 영 호 목사
(성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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