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2006-04-25 (화)
크게 작게
요즘 한인타운은 일련의 끔찍한 사건으로 인하여 끓는 가마처럼 들끓고 있다. 아버지가 자녀를 살해하고 남편이 아내와 자식을 총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조국과 부모형제의 품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낯선 미국 땅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족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이 겉으로 볼 때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교회도 잘 나가는 크리스천이라는 데서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신문이나 방송마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얼마든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든 인생의 위기를 만날 수 있다. 관계나 건강, 사업이나 모든 면에서 수없이 위기를 만날 수 있고 그 속에서 분노와 처리되지 않은 감정은 끔찍한 사건들로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다. 인생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한인사회 안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은 결국 우리들의 내면의 미숙함 때문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안에 있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문제다. 그것을 성인아이(Adult Child)라고 한다. 성인아이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에 치료되지 않은 인간성을 말한다. 신체적으로 성년인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철부지 어린이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믿음이 좋다는 것을 교회출석 잘하고 헌금을 많이 하는 것, 혹은 방언이나 병 고침 같은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믿음이란 성숙이다.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라 미숙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는 것이다. 신앙은 성장보다는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고 교회의 건강함 역시 숫자의 성장보다는 공동체 개개인의 성숙이다. 성령 충만이라는 것도 성령의 은사가 아닌 성령의 열매를 말한다. 은사는 인격과 상관없지만 성령의 열매는 내면의 성숙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교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했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영적 수준은 대단했다. 그들 가운데서는 방언도 했고, 예언과 능력도 행했다. 많은 지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저들에게서 신앙의 유치한 면을 보고 있었다. 남들 속에 있는 생각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는 은사가 있지만, 사소한 생각으로 분노하고, 교회서 분쟁하고, 당을 지어 싸우는 것을 보면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책망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인사회가 왜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왜 상식과 상관없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지 못한 성인아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처리되지 못한 미숙한 감정의 폭발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는 끔찍한 일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한인사회 안에서도 끝없는 반목과 대립을 일삼는 것도 그 속에 있는 미숙한 어린아이 때문이며, 교회 안에서도 목사와 장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성인아이가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싸우고, 분열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한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그 내면의 성숙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벗어나지 못한 내면의 상처와 아픔들을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여 치유되고 유치함과 미숙함이라는 어린아이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직분이나 외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성숙을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내 안에 있는 성인아이들과 결별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며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허물을 벗어버릴 때 이민사회는 더 밝아질 것이다. 이 부활의 계절, 4월의 눈부신 이름으로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버리고 성숙의 옷을 입자.
(LA 기윤실 실행위원) (213)387-1207, www.cemkla.org

김 병 호 목사
(횃불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