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천주교 222년 역사 자랑

2006-02-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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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222년 역사 자랑

한국 두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정진석 대주교.

정진석 추기경 서임 계기로 본 카톨릭 연보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한국의 두번째 추기경으로 임명되고 난 후 각계에서 한국 가톨릭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 천주교는 언제 전래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가톨릭 연보를 알아본다.
▲1784년: 이승훈, 베이징에서 그라몽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음. 귀국 후 명례동(지금의 명동)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을 중심으로 이승훈, 정약전 3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조선교회 창립.
▲1789년: 조상 제사 문제로 신자들이 박해를 받음. 이후 100년 이상 계속된 천주교 박해의 표면적 이유가 됨.
▲1795년: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들어옴으로써 조선교회 창설 11년만에 성직자 탄생. 전국 신자 수 4천여 명으로 늘어남.
▲1801년: 주문모 신부, 이승훈을 위시해 이가환 권철신 정약전 3형제 등 남인과 학자들이 모두 처형되거나 귀향가는 대박해 일어남.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성직자 없이 30년 동안 조선교회가 크게 발전한 것에 감동, 베이징 교구에서 독립된 조선 교구를 설정하고 주교 임명. 프랑스에서 성직자들이 입국해 포교 활동 펼침.
▲1839년: 헌종 때 두 번째 대박해 일어남. 270여 명 순교.
▲1845년: 김대건, 상하이에서 페레올 주교의 집전하에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 최초의 신부가 됨.
▲18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849년: 25대 철종 즉위 후 1863년까지 천주교는 보호를 받고 발전하게 됨.
▲1866년: 대원군 쇄국정책으로 1871년까지 박해가 연쇄적으로 계속됨. 1만여 명 순교.
▲1887년: 한불수교조약 발효로 종교의 자유 얻게 됨. 프랑스 성직자들의 자유로운 포교 활동이 허락돼 1만2천여 명의 신자가 늘어남.
▲1892년: 명동 대성당 건립.
▲1896년: 대원군 부인 민씨가 마리아로 세례를 받음.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김수환 추기경 서임.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 방문. 수많은 순교자들 중 103위를 성인으로 선포.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례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서울서 개최.
▲2006년: 정진석 대주교 한국 두번째 추기경으로 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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