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왕초보 성경공부’

2006-01-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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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공부도 햇수로 실력을 매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같으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쌓아온 주일학교 실력과 한번 들으면 절대 안 잊어먹는 나이인 중고등부 시절을 교회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커서는 한동안 세상 놀이와 재미에 빠져서 헤매인 적이 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신부 앞에 고해성사 하는 성도처럼 이따금씩 교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곤 했었다.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성경 공부에 열심을 내었으나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이 세상에서 얻은 지식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나의 ‘모름’만 더욱 확인이 되었다.
그러니 살아온 세월대로 나의 성경 공부 지식이 쌓였다면 지금쯤 랍비 수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나는 지금도 성경을 열면 페이지마다 모르는 말씀 투성이에 내 아이가 묻는 질문에조차 명료한 답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내가 요즘 새로운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멤버는 열두 살 적부터 사귀어 서로의 약점과 성격을 가장 잘 아는 동창들이다. 각자의 모습으로 살다가 미국에 와서 다시 만나 지내는 동안 함께 놀기도 많이 했고 집안의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늘 나누어온, 피붙이처럼 가까운 사이다.
그래도 생각의 길은 달라 몇몇은 크리스천이 되었고 누구는 목회자가 되었으며 또 몇은 신앙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한 때 함께 포커놀이를 했고 함께 술집엘 다녔으며 집집마다 번갈아 저녁을 차리고 우르르 몰려 밤을 새곤 했었다. 아내들끼리,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었고 비즈니스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 친구들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기로 했다. “우리도 이제 힘이 많이 빠졌나봐” 젊은 시절을 원 없이 놀아본 한 친구가 말했다. 내 힘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20-30대를 지나 40대가 되었을 때, ‘아아, 우리도 이 나이가 되네!’ 하고 비장한 느낌이 들었었다. 이제는 ‘오버 더 힐’도 지나 50이 되었고 세상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갖는다.
성경공부 자리에 앉기까지 수많은 이메일들이 오갔다.
<난 앞으로 10주 동안 뭔 일이 있어도 성경공부 개근할거다. 너희들, 방심 마라!> 결단을 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범수야, 왕초보랑 함께 공부해줘서 고맙다.>는 친구도 있었고 싫다고 버티는 친구를 향한 협박성 메일도 있었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불러줄 때 하는 게 최고다.>
이성적 논리에 강한 친구는 이런 메일도 썼다. <성경공부만큼은 신앙정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번 모임에 나갈 수 없음을…> 한 와이프가 올린 메일에는 <울 남편은 누가 하라면 절대 안 하는 성격이라 그냥 기도만 하고 있었지. 그랬더니 얼마 전, 주변의 다른 분들한테 나두 1월부터 성경공부한다 그러더랍니다.>
모임에 나온 친구들마다 형편이 다르고 소원도 각각이겠으나 결국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앉아 성경을 펴들었다. “우리가 같이 공부해본지가 얼마만이냐? 고3때랑, 재수할 때 종로에 대입 학원 다니면서 해보곤 30년만에 처음일세?” 케냐에서 마사이 부족을 섬기다가 안식년을 맞아 들어오신 젊은 목사님의 기도로 첫 시간을 맞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부터 영혼의 문제로 삶의 목표가 조정되는, 참으로 기쁘고 귀한 시간이었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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