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늘진 곳 사랑 실천 ‘참 밀알’

2006-01-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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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곳 사랑 실천 ‘참 밀알’

밀알장애우장학복지기금 수여식에서 25명의 미주지역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다.

■밀알선교단의 활동과 현주소

한인 기독교계에서 건실하게 일하는 단체를 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모금행사를 자주 갖지 않는 것, 그리고 떠벌이지 않고도 꼭 필요한 일들을 조용히 실천한다는 것 등이다. 밀알선교단, 나눔선교회,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몇 안되는 그런 단체들인데, 이들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일은 안하고 맨날 기자회견만 한다거나, 툭하면 모금행사를 벌이고 여기저기 손 내미는 단체, 그렇게 모은 돈을 어떻게 썼는지 전혀 밝히지 않는 기관들이 한인사회에 만연해 있는 탓이다. 특별히 남가주밀알선교단(단장 이영선)은 그런 점에서 확실한 신뢰를 가져도 좋을 듯하다.
불과 1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사회의 음지에 소외돼 있던 수많은 한인장애인들을 양지로 이끌어내고, 그들을 위해 수많은 활동을 알차게 해내면서도 한인사회에 큰소리 한번, 우는 소리 한번 안 내본 단체다. 또한 왠지 불우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장애인선교의 이미지를 밝고, 긍정적이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바꾸어놓은 것도 밀알선교단의 모범적인 활동 덕분이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지난 17일 감사한인교회에서 열린 ‘밀알장애우 장학복지기금 수여식 및 밀알지도자 위촉식’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밀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가지 행사를 통해 밀알의 현주소를 조명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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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와 미주 밀알선교단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뒷줄 왼쪽부터 김영길 목사, 한규삼 목사, 신용규 목사, 강원호 목사. 가운데 이영선 단장.


이름없이 소리없이 장애인 돕기 헌신적 봉사
“도움 받아야할 사람이 도움주는 모습 감동적”

밀알장애우 장학복지기금 수여식
총 50명의 장애인들이 일인당 1,000 ~3,600달러의 장학금을 받았다.
총액이 무려 10만4,600달러다. 놀라운 것은 수혜자가 남가주의 장애자들뿐만 아니라 전 미주(25명)와 한국(20명) 브라질, 중동 등 제3국(5명)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애자들로 범위가 매년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4년전 처음 시작되었을 때 ‘남가주’라는 단어가 붙어있던 ‘밀알장애우장학복지기금 수여식’은 3년전 ‘미주밀알장애우~’로 바뀌었고, 한국 장애자들까지 포함된 작년부터는 아예 ‘미주’라는 단어도 없어졌다. 그리고 첫 해 15명에게 5만4,000달러를 지급했던 장학금 규모는 매년 그 숫자와 액수가 늘어나 올해 처음 10만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그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일년에 한번 여는 ‘밀알의 밤’ 모금행사의 수익금과 단원들이 수없이 전화하고 찾아다니며 한푼 두푼 모은 피땀어린 돈이다. 그 돈으로 지체장애, 발달장애, 뇌성마비, 자폐증, 혈우병, 근육이양증, 시각장애, 청각장애, 척추장애, 뇌척수막, 근육무력증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장애인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장학금을 받으러 단상에 오른 장애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핑 돈다. 저렇게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감사하고, 훨씬 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대개는 같은 장애자들임을 알게될 때 더 한층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미주밀알선교단 부이사장 김영길 목사는 밀알사역에 동참하게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감동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야 남에게도 줄 수 있으며 줄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지요”
올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자동차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고정원씨(바이올라 대학)와 시각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상윤씨(워싱턴 주립대학)를 비롯,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중인 배 진(혈우병, 풀러), 한대연(시각장애, 월드미션), 이준수(뇌성마비, 트리니티), 김선근(뇌성마비, 앨리언스), 송윤석(왼쪽마비, 퍼시픽)씨, 그 외에도 구우정(지체장애4급, 풀러), 송현철(뇌성마비, LACC), 이장우(자폐, 글렌데일 커뮤니티 칼리지), 정주경(근육이양증, His University), 이승준(청각장애, Gallaudet University), 정 훈(청각장애, Gallaudet University), 김해영(척추장애, Nyack College), 유병덕(뇌척수막, LACC), 신로암(청각장애, Rebecca Minor Elementary), 조유리(청각장애, 풀러튼 칼리지), 그리고 청각 시각 언어장애를 가진 ‘승욱이 이야기’의 이승욱군, 자폐와 시각장애를 가진 음악천재 코디 리군 등이다.

밀알지도자 위촉식
‘밀알지도자 위촉식’은 밀알이 올해 처음 마련한 행사다. 그동안 밀알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온 사역자들에게 공식적인 감사를 표하고,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제와 격려도 나누기 위한 시간이었다. 이 한가지만 보아도 밀알은 그동안 형식과 조직 만들기에 힘쓰거나, 거창한 행사를 열어 대외적으로 선전하기에 급급하기보다 실질적인 사역에만 치중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날 위촉식에는 미주밀알선교단 총단장인 강원호 목사가 참석, 지난 6년간 남가주 밀알선교단 이사장으로 수고했던 신용규 목사(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를 미주밀알선교단 고문으로 추대하고, 남가주밀알 새 이사장에 한규삼 목사(세계로 교회)를 위촉했으며, 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를 미주밀알 부이사장(이사장은 이원상 목사)에 위촉했다.
이렇게 쓰고보니 밀알의 조직이 조금 복잡한 것 같아서 기본적인 설명을 보충한다. 원래 밀알선교단은 한국에서 이재서 박사가 1979년 장애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고 봉사하며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계몽을 일깨우기 위해 설립했다. 현재 한국내 29개 지단을 비롯 전세계 60개의 밀알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미주 밀알선교단은 1992년에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설립되었고, 남가주밀알선교단은 1997년 1월19일 창단되었으며 현재 북남미에 브라질과 캐나다까지 12개 밀알이 활동중이다. 이 12개의 밀알은 작년 ‘미주밀알선교단’이라는 하나의 네트웍으로 묶어졌으며, 총단장 강원호 목사, 이사장 이원상 목사, 부이사장 김영길 목사 체제로 전체 사역을 총괄하고 있다.
미주밀알의 한 조직인 남가주밀알선교단은 99년 7월 이영선씨가 미동부에서 LA로 이주, 다음해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눈에 띄게 활성화되고 사역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군웅할거’와 같은 상태였던 LA의 장애인 선교가 화합과 연합의 장으로 변화되었고, 수십개의 교회와 장애인선교단체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행사들-사랑의 캠프, 밀알의 밤, 토요 사랑의학교, 밀알장애우장학복지기금 수여식 등 알차고 풍성한 프로그램들이 연례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남가주 밀알은 현재 풀타임 스태프 11명, 사랑의교실 교사 5명, 그리고 자원봉사자 80여명이 액티브하게 일하고 있는데 거의 무보수로 일하는 이들에게 장기적으로 기본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전문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도 정비에도 힘쓰고 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 대개의 특수사역이 그렇듯 늘 돕는 교회, 돕는 사람만 돕는다는 것이다. 6년이나 이사장으로 ‘장기집권’ 해온 신용규 목사와 이날 새 이사장으로 위촉된 한규삼 목사는 남가주 밀알의 태동 때부터 지금까지 헌신해온 사역자들이다. 교회가 남가주에만 1,300여개를 헤아린다지만 꾸준히 지원하는 곳은 불과 35곳 정도, 장학기금 모금 때나 100여곳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미주밀알 총단장 강원호 목사의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크리스천의 영적 성숙도는 자기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장애인은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 또한 영적이며 인종적인 문제까지를 모두 다 안고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장애인을 사랑할 수 있다. 밀알의 신앙운동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운동이 되기를 기대한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든지 그 원동력은 ‘사람’이다. 이영선 단장과 신용규 이사장에 의해 남가주 밀알이 크게 성장했듯 이제 새 이사장 한규삼 목사와 함께 또 얼마나 성장하고 도약할지,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가져본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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