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2006-01-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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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문이 열리니까
대문도 열리네요

넓을수록 기분 좋은 것이 있다면 사람이 드나드는 길과 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넓게 트인 길을 가노라면 스스로 군자가 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좁은 길에서는 혹시 옆에서 차가 받지나 않을까 해서 숨도 죽이고 심장도 길만큼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지만 넓디넓은 길에서는 숨도 크게 쉬어 금세 허파에 바람이 꽉 들어차 붕 뜬 기분이고 마음도 그만큼 넓어집니다.
매일 새벽예배가 출근시간이어서 확 트인 프리웨이를 달리노라면 넓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일정하지 않은 저녁 퇴근까지 12시간 이상을 사방에 뾰족한 철제 창살 담장과 굳게 닫힌 게이트(대문) 속에서 덩그마니 갇혀 있다보니 영락없이 답답한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따로 없었습니다.
가끔 점심 식사 후에 동네 한두 블럭을 도보로 걷다가 예배당 주변에 사는 거주자들 대부분이 히스패닉 분들이고 바로 이웃에 중학교가 하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매주 토요일마다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 옛친구들이 모이면 못 다한 얘기 나누듯이 시무장로님들이 제 방에 모이시는데 거기서 제가 꿈 같은 얘기를 하나 꺼냈습니다. 주중에는 우리 교육관에서 프리스쿨이나 애프터스쿨을 하고 이 다음에 본당을 증축할 일이 생기면 옆에 있는 중학교에 강당을 하나 건축해주어 주중에는 학생들이 쓰게 하고 주일에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냐고 그림의 떡 같은 얘기를 했더니 장로님들이 모두 끄떡이시며 군침을 삼키시는 겁니다.
그런 후에 얼마 안 되어서 ‘뉴 프레이즈 미션’ 소속의 사랑, 믿음 합창단이 본당과 교육관을 연습 장소로 허락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당회에서는 흔쾌히 승낙해 주었습니다. 사용료는 물론 무료였지만 이 분들은 감사하게도 그랜드 피아노를 기증하셨고 본당에 조명기구를 달아주셨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에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프리스쿨 관계자들이 교육관을 둘러보고는 사용 신청을 해왔습니다. 역시 허락해 주었고 몇 개월 후에는 어떤 히스패닉 목사님이 주변 상업용 건물 렌트비가 너무 비싸서 견디기 힘드니 오후 시간에 예배당을 쓰게 해 달라고 해서 이것도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밀알 선교회의 정기모임과 예배드리던 교회가 이사가는 바람에 우리 예배당에서 모일 수 없겠냐고 문의했을 때 당연히 O.K. 2005년도가 거의 갈 무렵 장애우 교회를 개척하시는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예배 장소를 구하고 구하다 못 찾고 지쳐서 왔노라고. 당회에서는 이것마저도 허락해주었습니다.
주일에는 세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한 지붕에 여섯 단체가 이 코딱지 만한 예배당과 교육관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여러 민족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분주하게 사람들로 꽉 메운 한 울타리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장로님들 마음 문이 활짝 열리니까 꼭꼭 닫혀있던 교회 대문이 일주일 내내 활짝 열렸습니다. 덕분에 저는 답답한 동물원 신세를 면하게 되었고 2006년 새해에는 훤히 열린 문의 넓이만큼 앞길도 환하게 열릴 것 같은 기대에 가슴이 벅차옵니다.


홍 성 학 목사
(새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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