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느님 함께 하시니

2005-1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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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기다림으로

가을은 색의 계절, 단풍들이 요염한 정념의 빛깔로 물드는 계절이다. 지금 밖에는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진다. 별빛은 까만 하늘에 금싸라기처럼 뿌려져있고 그 쏟아지는 별빛아래 낙엽 깔린 오솔길을 혼자 걷는다. 바스락 바스락, 짓밟히는 낙엽이 고통스러워한다.
나무마다의 늘씬한 허리도 만져보고 매달려 바람에 부르르 떨며 언제 질지 모르는 잎들마다에 내 마음을 얹기도 하면서 지나온 삶을 생각한다.
그해 가뭄이 들어 온 들판이 불볕 더위에 타 들어가 농민들이 애타게 비를 기다리던 여름이었다. 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갔을 때 남편을 일찍 잃고 혼자서 우리 형제들을 위해 농사일을 하시느라고 검게 그을린 어머니의 여윈 모습을 보고 몹시도 가슴이 아팠다.
큰 형님이 계셨지만 그때 당시 도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해서 방학동안 만이라도 내가 어머니를 도우려했는데 그만 큰 실수를 했다. 동네 사람들은 농수로를 통해 저수지에서 물을 내보낸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두들 언제인가를 모르는 그날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한참을 놀다 집에와 낮잠을 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저수지의 물을 방류했다. 어머니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나를 깨웠고 내가 들판에 나갔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물을 논에 가득 채워 농수로가 거의 바닥이 났을 때였다. 나는 낙심을 했고 어머니께서 얼마나 실망 하실까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성경 말씀에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마태 24:36, 42)고 하신다. 또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있어 늘 준비하고 있어라’고 한다. 내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다면 그해 농사도 잘됐을 것이고 집 식구들 전부가 좋아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 그날이 후회스럽고 안타깝다.
우리 교회에서는 금년 11월 27일이 대림절 첫 주로써 교회 달력으로 새해 첫날과 같다. 곧 우리 주님이신 아기 예수님이 오신다.
불타던 단풍이 하나 둘 스러지고 찬바람에 빈 가지를 흔들리며 서있는 나무를 보면 그 속에서 성스러움을 느낀다. 그 나무는 자신의 소임을 끝내고 찬바람에 맡긴 채 훗날 새롭게 탄생하기 위한 분비를 한다.
광막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과 맞닿아 있는 까마득한 저편에서 늘 목마른 기다림으로 안타까워하는 우리들에게 어슴푸레한 박명을 헤치고 찰나에 광채에 둘러싸여 오실 님을 맞이할 준비는 됐는지?


임 무 성
(성아그네스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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