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명등진 사막의 유목민 베드윈

2005-1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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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돈벌어 오고 남자는 놀고 먹어, 너무나 심한 남녀차별

불행한 여자의 일생

베드윈(Bedouin)은 사막의 유목민이다. 이들이 어떤 기질을 가진 민족인가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잘 그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로렌스 와 함께 아카바를 공격하는 안소니 퀸은 베드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격 급하고, 종족끼리도 칼부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베드윈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종족간의 혈투로 점철되어 있다. 용맹, 충성, 명예가 이들이 자랑하는 삶의 자세다. 이들이 말하는 명예에는 복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족이 모욕을 당했을 때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 명예가 회복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베드윈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사하라 사막, 네게브 사막 등 중동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어 유럽의 집시와 비슷한 인구 분포를 보이고 있다. 낙타를 끌고 다니거나 오아시스 부근에 사는 아랍인은 모두 베드윈이다. 낙타는 이들에게 있어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낙타는 물 한 모금 안 마시고도 7일을 사막에서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주거이동을 자주 하는 베드윈에게는 필수의 교통수단이다.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베드윈의 세계에서는 불행이다. 남녀차별이 지독하게 심해 남아가 태어나면 양을 잡지만 여아가 태어나면 아무런 축하도 없다. 심지어 죽을 때도 남자시체는 천으로 5번 감지만 여자는 3번만 감는다. 돈벌어 오는 것도 여자 책임이고 남자는 집에서 놀고먹는다. 오아시스의 잡상인이 모두 여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낙타몰이에 관계되는 것은 부정을 탄다하여 남성 직업으로 되어 있다. 아이 기르고, 음식 만들고, 청소하고, 나무 해오고, 돈벌어 오고 - 미국 기준으로 보면 인간학대에 가까울 정도다.
특히 이들은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데 아무리 작은 텐트라도 남자용 거실은 따로 만들어 놓는다. 이동할 때는 불과 1시간 안에 짐을 싸야 하는데 이것도 여자 몫이다. 그럼 남자의 의무는 무엇일까. 가족을 위해 언제든지 죽는 일이다. 가족의 명예가 관계되는 일에는 목숨을 기꺼이 바쳐야 한다. 가족 중에 누가 모욕당하면 반드시 복수해야 하고 부모나 처자식을 죽인 자는 영원한 원수다. 베드윈의 종족간 혈전도 따지고 보면 끊임없는 복수전의 연속이었다. 한가지 놀라운 전통은 이들의 손님접대다. 자기 집을 방문하는 손님은 누구를 막론하고 3일을 재우며 빚을 내서라도 환대하는데 그 정성이 지극하다. 또한 이들은 철저한 무슬림이며 지금까지 기독교 신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왕가도 본래는 베드윈 출신이다. 베드윈 중에 ‘아지즈 이븐 사우드’라는 부족으로 이들이 역사상 처음 무력을 통해 아라비아 통일을 이루어낸 가문이다. 사우디 왕가의 옛날 사진을 보면 사막을 휩쓸고 다니며 이웃과 끊임없는 약탈전을 벌인 베드윈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사우디 인구의 25%는 베드윈 혈통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다시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 때문에 베드윈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남녀차별이 심하면서도 손님만은 가장 정성 들여 대접하는 민족 - 가장 사나우면서 가장 친절한 두 개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몸은 21세기에, 정신은 18세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바로 베드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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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있는 베드윈의 텐트. 천막을 받치는 막대기가 몇 개냐에 따라 부가 측정된다. 아무리 좁아도 남자용 거실을 따로 만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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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밑에서 낙타 가이드를 하고 있는 베니 하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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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시장에 모여 있는 베드윈들. 이들은 낙타와 말 기르는 것을 대단히 명예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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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네게브 사막에서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베드윈 여성들. 옷 칼러가 화려한 것으로 보아 이들은 미혼이다. 기혼여성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 베드윈 여성들은 너무나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40세만 되면 할머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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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에 있는 베드윈 노점상들. 남성은 집에서 놀고 여성들이 생활비를 번다. 이들에게 한국관광객은 큰 손님이다.


이 철
<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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