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랫동안 품은 버킷리스트 실현 감사…목가적인 풍경에 가슴이 뻥 근심 사라져

2024-10-04 (금) 김희원 시인·샌프란시스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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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2024년 산티아고 3차 순례 여행을 다녀왔다. 오랫동안 버킷리스트로 품어 왔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선뜻 나설 수 있는 여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일보 순례여행은 걷기가 힘든 사람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도록 하고 숙소도 여러명이 한 방에 숙박하는 알베르게가 아닌 고급 호텔이라 참가자 대부분이 60-70대인 순례 참가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Camino de Santiago, 영어로는 James Way라고 하는 이 루트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곳에 콤포스델라라는 성당을 지으면서 성지가 된 곳이다. 야고보의 무덤은 지금 콤포스델라 성당안에 안치되어 있어 순례길을 완주한 순례객들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나도 야고보의 비문에 손을 얹고 잠깐이나마 기도할 수 있었다. 2000여년 전 복음을 전파하다 순교한 사도의 비석을 직접 만져보며 기도하자 열흘 동안 쉬지 않고 걸어오며 힘들었던 육체의 피곤이 모두 풀리는 듯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루트는 여러 길이 있는데 우리가 택한 길은 스페인 북쪽 마을인 생 장 피드 로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생 장 피드 포르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아 산티아고까지 가면서 카페 등 마을 곳곳에서 순례를 증명하는 인증 도장을 받는 일은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인증 도장을 열심히 받은 덕에 순례자 여권의 앞뒷면을 다 채웠는데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다리 하나가 없는 커다란 개와 함께 있었던 여성이 찍어준 빨간 도장이다. 그녀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된 좋은 문구가 적힌 책갈피 사이즈의 쪽지를 준비하여 그녀의 부스를 찾아온 순례객이 직접 골라 갖게 했다. 그녀의 바구니에 동전을 넣으며 문득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인 순례를 떠난 두 노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삶은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며 좀더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순례길 걷기 첫날은 말로만 들어왔던 수려한 피레네 산맥을 넘는 일정이었다. 시작부터 오르막을 걸어 1430m의 정상까지 20여 킬로미터를 올라가야 했다 올라갈수록 숨은 가쁘고 힘들었지만 자갈이나 돌길이 아니라 걸을 만 했다. 게다가 양옆으로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리며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졌다. 길 중간중간에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문양과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 거리와 화살표가 그려진 까미노 표지석이 어김없이 서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었다.

순례길에서 많은 순례객들을 만나게 되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순례길을 함께 걷는 순례자로서의 동질감에 서로에게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순례길 되세요’ 라는 인사를 한다. 순례길 내내 Korean American이 아닌 한국인도 종종 만났는데 타지에서 만나는 동포는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길가 양옆에 있는 나무끼리 머리를 맞대고 있는 나무 터널도 지나고,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 길을 걸을 때면 고요함 속에서 그 동안의 나를 돌아보며 자아 성찰을 하게 되고,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옥수수밭을 지날 때면 따가운 햇살 사이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도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걷기 시작한 지 열흘째, 마침내 산티아고의 콤포스델라 성당에 도착해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 끼여 성당에 입성했다. 초를 켜서 가족의 안녕과 순례길 완주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리고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비문에 손을 얹고 또 한 번 기도했다. 내 생애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찼다. 가톨릭 신자들은 정오 미사를 드렸고 기독교 신자들과 방문객들은 야고보의 무덤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했다.

대성당 광장에는 순례길을 완주한 사람들이 성취감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콤포스델라 대성당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다음으로 간 곳은 카미노의 시작점인 0km 표지판이 있는 땅끝마을 묵시아와 피스테라였다. 어린애처럼 모두 0km 표지판을 붙들고 인증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마지막 코스는 피스테라,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낡아진 그들의 신발을 태웠다던 곳으로 그것을 상징하듯 한 짝의 작은 부츠 조각품이 절벽 위에 놓여 있었다. 길이 시작되는 땅끝마을까지 방문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완벽한 일정은 끝이 났다.

한국일보 순례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포르투갈의 제 2의 도시, 포르투 관광이었다. 포르투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라 순례여행의 보너스처럼 다가왔다. 동루이스 다리를 비롯해 렐루서점, 아쥴레주로 유명한 상벤토역사 등등을 모두 가이드를 따라 관광할 수 있었다.

가슴속에 묻어왔던 인생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게 해준 한국일보에 감사드리며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순례길을 누비며 일일이 우리의 모습을 담아 순례길 동영상을 만들어 준 설경숙님은 앞으로 내가 닮고 싶은 나의 푯대가 되었다.

Buen Camino!!!

<김희원 시인·샌프란시스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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