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잠언의 말씀을

2005-08-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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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새벽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살며시 떠나는 이른 아침, 어둠이 주변에 아직도 머물러있어 아무도 오르지 않았을 새벽산을 달렸다.
여명이 점점 밝아오며 그 곳에서 새벽달과 아침 노을을 보고 또 산을 깨우는 새들의 울음소리까지 들으니 더욱 하루의 행운을 만날 것 같아 좋았다. 서늘한 아침 공기였는데도 벌써 이마에서 흐른 땀은 목을 타고 가슴과 등을 적셨고 몰아쉬던 가쁜 숨을 고르며 멀리 아래를 내려보다 지난 어느 한 순간을 기억하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해 여름 방학이 되어 서울에서 처제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여행을 왔다. 며칠 후 아내는 처제와 조카들을 데리고 여행사를 통해 여행을 떠났고 우연히 같은 날 우리 아이들도 교회에서 가는 섬머 캠핑을 떠나 혼자 집에 남게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와 저녁을 챙겨 먹으려다 냉장고에 종이 쪽지 한 장이 나불거리는 것을 봤다. 캠핑을 떠나며 초등학교 4학년이던 막내아들이 나에게 쓴 편지였다.
“아빠, 엄마는 이모와 여행을 떠났고 나는 형과 함께 섬머 캠핑을 가서 아빠 혼자 남게되어 외롭겠지? 냉장고를 열면 치킨 너겟과 TV디너가 있으니 마이크로 오븐에 각각 몇분씩 데워서 꼭 먹어요. 캠핑 가서 또 편지 쓸게. 안녕, John.”
서투른 한글과 영어로 간단하게 쓴 것이지만 나는 그 아이가 쓴 편지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상시 별로 표현을 하지 않아 몰랐었는데 그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읽고 찡 해오는 내 여린 감정을 누르지 못하여 나는 그만 눈물을 글썽거렸고 지금 까지 보아왔던 그 아이가 다시 보였다.
이제는 애들이 다 커서 대학에 다니거나 직장에서 일을 하느라 아파트를 얻어 나가 살지만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우린 씨름을 하며 친구같이 장난을 하며 지낸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모른 척 하는 것 같지만 실제 아이들이 더 민감하고 마음속에 더 담아둔다. 곧 방학을 끝내고 애들이 학교로 돌아갈 시기다. 빨리 학교가 시작하여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은 부모부터 멀리 대학을 보내 아이와 헤어져 섭섭하고 또 걱정하는 부모, 그리고 뿌듯하고 시원한 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각각 다른 소원들이 있겠지만 애들이 떠나기 전에 함께 시간을 내어 구약성서의 잠언집,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금언과 잠언 ‘이것은 사람을 교육하여 지혜를 깨치게 하고 슬기로운 가르침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요’ (잠 1;2)부터 ‘ 그 손이 일한 보답을 안겨주고 그 공을 성문에서 포상해 주어라’(잠 31;31) 까지를 읽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또 아이들은 떠나야 성숙한다.


임무성
(성아그네스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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