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묵향 깃든 마음은 어느새 ‘명경지수’

2005-06-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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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주말나기
‘난’치는 주부 신무희 씨

강릉 오죽헌의 뜰 아래채에 서면 우리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온화함과 고결함이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화조와 사군자, 산수를 즐겨 그렸던 사임당의 섬세한 화풍은 후세의 시인과 학자들로부터 격찬을 받고 있다.
난을 치기 위해 화선지를 펴고 먹을 갈며 신무희(68·주부)씨의 영혼은 신사임당을 만난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붓을 잡아도 이렇게 먹을 갈고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이민 와서의 삶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뿐이었다는 고백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본 삶이 허무하다고 느꼈을 때 그녀는 붓을 잡기 시작했다.
약 2년 전, 인연을 맺고 있던 교회에서 한국화로 이름을 날리던 추순자 선생을 초빙해 클래스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등록을 했다.
대부분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보면 초등학교 때 교내 사생대회에서 장려상이라도 받았던 경험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진짜 그림에 있어선 백지 상태. 그저 막연하게 언젠간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바람과 열정만 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소질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노력은 배가 되었다. 시작한 지 2년여, 필력을 키우기 위해 신문지에 일자로 획을 긋고 난을 꺾으며 그녀는 나이 먹고도 뭔가를 시작한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하고 예쁠 수가 없다.
가족들의 응원 역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그림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 힘. 남편과 아들딸은 물론 사위와 며느리까지 어머님 그림 그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했다.
마음을 모아 대상을 그리고 하얀 여백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국화. 그 위에 한두 구절 멋들어진 한시도 적어 넣느라 그림을 시작하며 글씨도 함께 배우게 됐다.
선비의 4벗이라는 사군자는 서예 기법을 그대로 적용시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예로부터 필획 자체가 선비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해서 인성을 갈고 닦는 수단으로 여겼던 그림이다.
그녀는 먹으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그리고 빨강, 노랑 화려한 물감으로는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동백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그린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작품도 제법 쌓였다. 올해 벌써 5번째 작품 전시회에 참가한 그녀는 오는 7월 중, 부채 전시회를 앞두고 열심히 작품을 준비 중이다. 한국화 교실에는 그녀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있다.
미국 땅에서 열심히 한국 전통 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취미를 공감대로 친교를 나누는 만남을 그녀는 귀하고 아름답게 여긴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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