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말을 책과 함께

2005-05-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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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베스트셀러
공지영 신작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형수 통해 본 삶의 의미 재조명
‘봉순이 언니’이후 7년만의 장편

“생명은 살아있으라는 명령”


십수년전 한국의 페미니즘논쟁과 운동권의 후일담 문학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화제의 작가 공지영씨가 ‘봉순이 언니’ 이후 7년만에 내놓은 읽을만한 장편소설이다. 최근에 발간된 ‘별들의 들판’이 단편 혹은 연작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은 장편소설”이라고 믿는 독자들에게는 실로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얼마전 재능이 있고, 무엇보다 장래가 촉망되어 한국 영화계를 끌고 나갈 것이라고 모두 믿었던 이은주씨의 자살 소식 이후 모방 자살이 늘고 있다 한다. 심지어는 꽤 낙천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조차도 말할 수 없는 짙은 허무감을 느꼈을 정도니 빠른 사회 변화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에게 그 충격은 더 컸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생명’이란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며, “때론 살아서 이 생을 견디는 것이 죽음보다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목숨이라도 분명 유지할 가치는 충분하다.”
한 여자가 있다. 나이는 서른 살, 살아 있을 이유도 살아갈 의지도 희망도 없다고 믿는 문유정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주인공이고 이 소설의 화자이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피폐하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그녀는 삶에 발붙이지 못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다. 세 번째 자살시도 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지루한 치료과정 대신 수녀인 고모를 따라 한 달간 사형수를 만나는 일을 택한다. 자신이 마음을 내주는 유일한 사람인 모니카 고모의 간곡한 청이었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나선 것.
그곳에서 그녀는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윤수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생의 절망을 알아버린 그의 눈빛과 생의 벼랑 끝에서 웅크리고 두려워하는 표정에서, 유정은 너무나 익숙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 닮음 때문에, 또다시 자신의 상처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 때문에, 그녀에겐 이 만남 자체가 버겁고 혼란스럽고 느껴진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는 남자의 깊고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결국 여자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과 세상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내치고자 하는 마음의 밑바닥을 정면에서 응시하게 되는 시간들이 슬프고 또 아프게, 아름답게 그려진다.

폴 리
<알라딘서점 대표·213-739-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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