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범한 격려

2004-12-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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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호주에 가셨다가 희귀한 물고기를 본 이야기를 했다. 대형 수족관에 있던 그 물고기는 살이 투명해서 속의 뼈까지 다 보인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자기네 교회의 입구에도 수족관을 마련하여 그 물고기를 구해 넣고 싶다고 했다. 투명한 삶이 보기 좋아서.
목사는 벌거벗고 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언제 자고, 언제 깨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먹는지, 연예인도 아니면서 그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 있다.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서, 종이에 그 월급의 내역을 일일이 밝혀서 온 사람들에게 매달 나누어주는 사람은 아마 목사밖에 없을 것 같다.
목사는 손놀림과 발걸음, 작은 얼굴의 표정까지도 언제나 교인들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노출되어 있는 삶이 자칫 조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고단하기 짝이 없지만, 한편 그만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하면 감사하고 송구한 일이다. 그래서 목회란 스스로를 드러내 놓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설교에는 우리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너무 우리 집 얘기를 하면 거부감이 있을지도 몰라서 자제해 보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예화의 단골메뉴가 되곤 한다. 어느 주일 오후, 큰 녀석이 와서 묻는다. “아빠, 설교 할 때 내 얘기 했어?”“응, 왜 아빠가 사람들에게 우정이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속상하니?”“아니, 그치만…” 말꼬리를 맺지 않고 돌아선다. 노출된 삶이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나는 이제껏 이 칼럼을 통해 우리 아이들과 가족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난 해 말, 이 칼럼을 일년 동안 맡아 달라는 기자로부터의 부탁을 받고, 자르듯 거절할 수 없어서 기도해 보겠다고만 대답했었다. 글에 남다른 재주가 없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기왕에 많은 사람들이 읽는 신문에 글을 실으려면 도움이 되는 얘길 해야 할 텐데, 스스로 그럴만한 주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 고민할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되지도 못한 글을 실으면서 신문에 얼굴을 내민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가정에 대한 얘길 나누면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쉽지만은 않은 우리네 이민생활인데, 그저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아이들과의 일상을 진솔하게 나누면서, 우리 식구들을 드러내어 놓으면, 혹시라도 따뜻한 격려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침마다 까치 머리를 하고는 교실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칠 줄 모르는 천진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저녁거리를 앞에 두고 작은 손을 함께 모아 기도하면서, 쉴 새 없이 귀를 간질이는 재잘거림을 들으면서… 일상의 평범 속에서, 마음에 다가오는 놓치기 쉬운 행복을 조금씩 꺼내 보이느라고 했다. 너무나 평범해서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소박한 마음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을 부려 보았다. 노출된 평범함이, 꾸며진 훌륭함보다 더 깊은 격려와 위로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김 동 현 목사
(언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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