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4-11-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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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운다

C도, D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증거했다.어느덧 밤이 깊어갔고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찬양을 했다. 찬양을 드리는 동안 우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한 동안 내 별명은 고장난 수도꼭지였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절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산천초목도 울렸다는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죽어 가는데도, 옆에 앉아 함께 영화를 보던 예쁜 아가씨가 흐흐흑 흐느끼고 있는데도 나는 그저 덤덤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커서 마지막으로 운 것은 군의관 복무를 하던 도중,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철없는 막내아들로 아버님의 속을 썩여드렸던 때늦은 후회가 내 마음을 아프게 찔러왔고 아무리 애써보아도 더 이상은 사랑을 드릴 수 없다는 이생에서의 단절감으로 가슴이 헉 하고 막혔었다. 나는 그때 지극한 슬픔을 느꼈는데 ‘기뻐도 음란하지 않고 슬퍼도 마음 상하지 아니하노니...’ 라는 장자의 말대로 나의 슬픔은 눈물이 되어 흘렀으되 마음 찢기는 고통은 아니었다. 그리고 눈물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도꼭지는 다시 고장이 났는지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십여 년 세월이 흘러 40대가 되었을 때 나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눈물을 흘렸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엉터리 교인 노릇을 해왔던 나는, 어느 차가운 가을날, 그분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회개와 구원의 감격이 어우러져 슬픔과 기쁨이 한데 뒤섞여나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심장은 그 이전의 나무토막 같던 고체 상태를 벗어버리고 말랑말랑 흐물흐물, 물인 듯, 기체인 듯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수도꼭지 눈물샘 역시 고장난 상태가 바뀌어서 그동안에는 영 물 한 방울 안나오던 것이 이번엔 툭하면 잠글 수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증세로 바뀌고 만 것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평신도들과 간증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A형제는 한때 마약중독으로 가족들의 속을 썩이다가 강제로 산상기도회 모임에 끌려왔다.
“둘째 날 밤에 기어코 기도원을 탈출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지요. 어느 산장 앞에 세워져 있던 차를 훔쳐 타고 내려왔는데...”
A는 이튿날 새벽, 차량절도, 마약 소지 등으로 체포되었고 감방 안에서 한 크리스천 죄수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주님을 영접했다. 이렇게 귀한 말씀을 왜 그동안 나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A는 가슴을 치며 감방 안에서 성경을 3번 통독하였고 지금은 세상에 나와 주님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B형제도 가정 폭력으로 철창 신세를 여러번 졌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결혼 후 아내를 향하여 그 분노를 분출하게 되었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보다못해 자녀들이 경찰을 불렀고 B의 가슴에는 후회 대신 분노와 원한만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며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토록 용서할 수 없던 닫혀진 마음을 그분이 열어주시고 더 큰사랑으로 용서하실 때에 저는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C도, D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증거했다. 어느덧 밤이 깊어갔고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찬양을 했다. 찬양을 드리는 동안 우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때로는 남자도 운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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