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4-11-04 (목) 12:00:00
크게 작게

▶ 치과 가기 싫으세요?

요즘도 바이아그라의 인기는 계속 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약사 친구를 만나 물었더니 지금도 고국 방문 최고의 인기 선물이라고 한다.
“아니, 그것이 처방 약일텐데 어떻게 마음대로?” 내 질문이 어리석었는지 친구의 대답인즉, “물론이지. 그런데 약을 내주면 환자 백이면 백 명 모두, 사실은 자기가 쓸게 아니고 한국에 있는 친구 갖다 줄거라는 거야! 아니, 누가 물어봤냐구!”
나는 내심 그 친구가 부러웠다. 저렇게 인기 좋은 약을 내줄 수도 있고, 하나만 더 줄 수 없냐면서 사정하는 환자 앞에 단호하게 노우! 도 해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억울하게도 치과에 오는 환자들은 등치 커다란 어른이라도 공포에 질렸거나 싫은데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뿐이어서 오히려 의사인 내가 사정사정 달래가며 치료를 해야한다.
어떤 환자는 더 크게 열어도 보일까 말까한 입 속을 점점 더 오므리기도 하고 핼로겐 램프의 각도에 딱 맞추어놓은 의자 높이에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듯 멀어져서 애를 먹인다. 치과가 무슨 고문 장소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2년 전 내가 캘리포니아 치과의사 면허시험을 치를 때, 시험 파트너가 되어줄 환자를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나 데려가면 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충치가 시험관이 요구하는 정도에 정확히 이르른 사람, 또 소위 봉을 해 넣는다고 말하는 아말감 처리대상 환자의 경우, 역시 정확히 어떤 치아가 일정 깊이로 상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험 치를 도시가 먼 곳이면 환자를 비행기로 모셔다가 좋은 호텔에서 숙식을 대접해가며 협조를 구하기도 한다.
환자 측에서 보면 무료로 치료를 받는 셈이지만 어떤 환자들은 따로 일당을 원하기도 하니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시작부터 억울하다.
나 역시 그때 조건에 꼭 맞는 환자를 찾느라 애를 썼다.
시험을 앞두고는 지나가는 사람만 보아도 입을 들여다보았고 개스 스테이션에 가서도 돈을 받는 캐쉬어의 입 속을 재빨리 훑어보곤 했다. 내가 살던 동네 이웃들은 일단 다 나의 매서운 눈매에 한번씩 입 속을 인스펙션 당한 사람들일 것이다.
어쩌다가 비슷한 조건의 환자를 만나면 정밀 진단을 했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기준에 못 미치면 속으로 ‘초컬릿을 먹여서라도 저 이를 더 썩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아쉬워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전혀 안 무서운 치과의사가 되었고 그 사이 주님을 만나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요즈음에도 열심히 환자를 찾는다. 내가 은혜로 거저 받은 기쁨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환자들을 자세히 찾는다.
아직 이 세상 가운데 방황하는 영혼은 없는지, 그들과 만나고 싶어서 환자들을 찾는다. 환자 가운데 마음이 아픈 사람은 없는지,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 나는 환자를 찾는다.
아픈 치아만 고쳐주는 의사가 아니라 목마르지 않게 할 영원한 샘물을 함께 나누어 마시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환자를 찾고 있다.
<치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