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트로이 목마

2004-07-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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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그리스 문명의 여명기인 기원전 13세기경 소아시아의 에게해변에 트로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있었다.
이 트로이의 왕자가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스파르타의 왕비를 유혹하여 유괴해 간 사건으로 그리스의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트로이를 공격했다. 그리스는 10년 동안 트로이를 공격했으나 성이 워낙 견고하여 함락하지 못하고 용장 아킬레스가 발목(아킬레스 건)에 독화살을 맞아 전사하는 등 어려운 싸움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리스군은 계략을 썼다. 트로이 성 밖의 해변에 거대한 목마와 첩자를 남겨두고 전군이 퇴각하여 인근의 섬에 숨었다. 첩자가 트로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목마는 그리스인이 여신 아데나에게 바친 것인데 트로이인이 성 안에 끌어가지 못하게 크게 만들었다.


목마가 성 안에 들어가면 트로이 함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트로이인은 성벽을 부수고 목마를 끌어들인 후 잔치를 베풀어 술에 취해 버렸는데 목마 안에서 쏟아져 나온 그리스 병사들이 성문을 열자 그리스군이 총공격을하여 트로이성을 함락시켰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의 시인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전쟁 이야기이다. 전설로만 알려졌던 이 트로이 전쟁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트로이의 존재가 확인됨으로써 신빙성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 트로이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성을 견고하게 쌓아 외적의 침입을 방어했기 때문에 방어가 완강하면 성을 함락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특공대를 몰래 성 안에 잠입시켜 성문을 열면서 파죽지세로 진격해 들어가는 전법을 많이 썼다.

지난 수년간 꾸준히 증가해 온 탈북자들의 남한 행렬이 드디어 집단화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들어 한국은 처음으로 동남아 탈북자 450여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집단 입국시켰고 앞으로 탈북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을 탈출하여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유랑민 생활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위해 참으로 다행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 앞으로 남북 경협 등으로 남북한의 인적교류가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남북한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 이해하고 상부상조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에도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며 약도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수가 있다. 북한 인민을 굶겨 죽어가면서도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김정일이 이 새로운 시대를 악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앞으로 탈북자의 입국 행렬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게 되면 그 탈북자 대열에 김정일이 보낸 간첩이 숨어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 남북한의 경협 등으로 인적 교류가 빈번해질 때 북한쪽 사람들이 김정일의 앞잡이인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으며 남한쪽 사람들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발목이 잡혀 북한 앞잡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우려는 대규모 인적 교류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감지되어 온 사실이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보당국이 북한의 간첩을 잡았다는 소식은 과거 수년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몇년 사이에 반미 친북을 주장하는 촛불 시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면에 북한의 영향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해방 후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북한과 소련의 지시에 따라 찬탁시위를 했던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무력으로 달성하는 것은 남북한 어느 쪽에서도 불가능하다. 통일을 위해 어느 한쪽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국제 세력균형상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일을 한다면 평화통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국민의 선택에 의한 통일이 될 것이다. 이 국민의 선택을 적화통일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 공산당의 선동 선전전술이므로 김정
일은 핵무기가 아니라 이 선전선동의 전사들을 남한 깊숙히 침투시키는 일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침투에 대해 남한이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길은 법제의 정비와 단속의 강화 뿐이다. 건설적인 남북협력은 보장하면서도 반국가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통해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보다도 더 법적 정비가 필요한 이 때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기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태의 발전을 모르는 철부지들이 아니면 북측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 넣는다는 구실로 시작된 남북관계로 북한의 세력이 마음껏 들어오게 되었는데 보안법 마저 없애 버린다면 이는 트로이 목마를 끌어다 놓고 즐거워서 술 취해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지금이야 말로 트로이 목마의 어리석음을 상기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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