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004-03-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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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편집위원)

봄은 와도 봄 같지 않다.기다리던 봄은 왔는데 피부로 느끼는 날씨는 쌀쌀하다. 그래서 봄은 온 것 같은데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주위의 표정에서도 좀처럼 봄을 찾기가 쉽지 않다.봄은 왔는데 오히려 한인사회는 불안의 외투를 입고 있고, 봄을 맞는 기쁨보다 두려움에 앞선 한인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몇 년째 지속되는 불경기로 한인업계가 불황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부 한인업계는 ‘가격파괴’ 경쟁을 하면서도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고객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에 따른 급속한 수익성 악화로 인해 폐업 위기에 처한 업소들도 있다.


세금보고 마감 일을 앞두고 납세를 연기하거나 분납 신청을 하는 한인들도 늘고 있다. 수년간 극심한 불경기로 현저히 소득이 줄어들면서 벌금을 감수하고도 납세액 지불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미 경기 침체 여파로 수난을 당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울상을 짓고 있는 한인업소도 한 둘이 아니다. 몇 년 동안 불경기로 거덜난 한인업계가 봄이 찾아 왔건만 도무지 기지개를 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해 어찌하면 좋을지 모른다며 넋두리하는 업주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가고 있다.그야말로 한인업계는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게 스산한 계절이다, 아직 한인업계는 ‘춘래불사춘’인가 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왕소군’이란 시에서 비롯됐다.「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힌다.

기원전 33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 전 정략의 도구가 된 후궁 왕소군은 흉노 왕에게 시집갔다. 왜, 그 많은 후궁 가운데 하필이면 왕소군이었던가. 거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나라 원제는 우호수단으로 흉노 왕에게 후궁 한 명을 보내기로 했다. 원제는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후궁들의 초상화집
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었다.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

원제는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명하여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놓게 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 초상화집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 후궁들은 황제인 원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투어 모연수에게 뇌물을 받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졸라됐다. 하지만 왕소군은 모연수를 찾지 않았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다.

그래서 초상화집만 보고 심사를 한 원제는 왕소군을 선발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려고 말에 오를 때 보니 초상화와 달리 왕소군은 절세 미인이었다. 너무 아까워 땅을 쳤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화가 난 원제는 화공을 참형에 처했다. 왕소군은 흉노 땅에서 항시 눈물로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그 원한이 맺혔던지 나중에 황무지에서도 그녀의 무덤에만은 풀과 꽃이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한인업계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인은 물론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하루 빨리 해결되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때문에 업주는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매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각종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또한 각 직능단체도 소속 회원업소들이 침체국면을 벗어날 수 있도록 공동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물론, 한인들도 가능한 한인업소를 이용하여 수년간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한인업소들이 불황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처럼 한인사회가 힘을 하나로 모을 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의 한인업계가 봄의 기지개를 활짝 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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