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그의 꿈이 바로 내 꿈

2004-03-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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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편집국 부국장>

대학시절 많은 학생들이 연극무대를 기웃거린다.4년간 국어국문학을 공부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연극 활동이었다.국문과에서는 1년에 한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공동 작업으로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다.

기성작가의 희곡을 골라 연출, 연기, 무대감독, 의상, 조명 등 모든 학생들이 한가지를 맡아 대사 연습을 하고 동작에 들어갔다. 공연 일정이 촉박해지면 무대 의상과 소품을 구하러 다니는 등 긴 겨울방학동안 매일 만나다시피 공연을 준비하다보면 꽃피는 춘삼월에 멋드러진 작품 하나가 무대에 올랐다.


작품을 보는 견해가 서로 틀려 충돌할 때도 있지만 자주 만나다보니 선후배간의 돈독한 정이 들뿐 아니라 선후배간 위계 질서를 저절로 배우게 된다.국문과 교수들은 교양과목을 듣는 1학년 학생들에게 국어 숙제로 연극을 본 후 감상문을 제출하게 했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1학년생들은 연극을 보았고 그것이 무대에 서는 배우나 스텝들에게 상당히 큰 용기를 주었다.

학생연극이니 티켓이나 팜플렛 값은 얼마 안되지만 학교 보조금, 교수들의 격려금 이상으로 순수한 관객의 입장료는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안겨주었다.요즘, 우리가 살고있는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는 한국의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영어명 Cookin)가 아시아 공연작품 사상 처음으로 전용관을 마련하고 지난 7일 공식 개막을 거쳐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난타는 ‘한국으로부터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작품으로 무대 인사를 시작한다. 이 작품을 보며 외국인들은 이국 문화의 신비함에 매료되겠지만 한인들은 잊었던 토속문화에 아련한 그리움과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던 우리의 맥박과 율동을 느낄 수 있다.

한 두시간의 극 한편이 관객들에게 알리는 한국문화 홍보는 유능한 외교관의 수십년간 노력을 일시에 획득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리니치 빌리지 소재 미네타 레인 극장에서 막올린 ‘난타’ 제작팀은 개막당일 코파카바나 연회장에서 전 관객과 배우, 스텝진이 모인 가운데 축하행사를 열었다.

PMC 프로덕션 송승환 대표는 “20년 전 뉴욕에 와서 브로드웨이 무대에 우리의 것을 올리겠다는 꿈을 가졌다. 이제 그 꿈을 실현시켰다. 난타가 장기 공연하여 앞으로 20년후 다시 이 코파카바나에서 축하행사를 가질 꿈을 가진다”고 인사말을 했다.

종영날짜를 정하지 않은 ‘오픈 런’(Open Run) 방식으로 장기공연 중인 ‘난타’를 보면서 먼 대학시절 국문과 교수들이 수백명의 문리대 1학년 학생들에게 숙제로 감상문을 써내라고 한 것처럼 한인단체나 한인교회 등도 ‘단지 같은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난타를 관람하면 어떨까싶다.

그런데 여러 기관에서 기금 모금을 위해 난타 할인 티켓을 팔다보니 프로모션 기간이 끝났음에도 일부 한인들은 정가의 티켓으로 구경가기보다는 할인 티켓을 찾느라 연극을 볼 수 있는 인구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또 기자한테도 숱한 사람들이 공짜 티켓을 구할 수 없느냐고 물어온다.


그런데 이곳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다. 미국 특히 뉴욕의 문화계는 절대로 무료 티켓을 뿌리지 않는다. 취재를 하러간 문화담당 기자에게 그것도 당일 극장 앞에서 ‘손에서 손으로’ 티켓을 줄뿐이다.

간혹 한인들이 공연하는 극장의 가장 좋은 앞자리가 줄지어 비어있는 곳을 보면 참으로 보기 흉한데 그곳은 공짜 티켓을 받은 사람들이 표만 받아놓고 오지 않은 것이다. 자기 돈으로 티켓을 사지 않았기에 이런 일들이 생긴다.

요즘 난타 공연장에는 외국인들로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평소 난타를 보고싶어하던 사람들은 우리 문화를 홍보한다 생각하고 주저말고 티켓을 구입하기 바란다. 이는 유학시절 토요일이면 프리마켓에서 시계를 팔며 생활비를 벌던 한 한인 젊은이가 모국에서 성공시킨 극을 미국까지 끌고 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는 것에, 또 20년 장기공연의 꿈을 착착 실현시키고 있는 그 꿈에 우리 모두 동참하는 길이다. 그의 꿈이 바로 내 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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